이즈른 전력 60분 75주차, 카페
아침 9시. 출근 시각은 지나갔지만 어딘가에 가기엔 조금은 이르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각, 이즈미는 나갈 채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단정하며 나선 길. 여전한 겨울바람에 입에서는 하이얀 입김이 새어나왔고 껴입은 천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가 오돌오돌 몸을 절로 떨게 해 종종걸음으로 카페 앞까지 왔다.
“오늘도 오지 않으려나보네.”
정해둔 오픈 시각을 넘었지만 당연하다는 듯 뒤집혀있는 팻말에 실망감이 돌았다. 이즈미는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가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꺼져 있는 불을 켜고 그가 기다리던 주인이 어지럽힌 내부를 하나 둘 정리하며 언제 올지, 오늘은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를 주인을 대신하여 가게를 열었다.
대충 정리된 내부에 이즈미는 그제야 close로 되어있는 팻말을 돌렸다. open. 오늘도 주인이 없는 카페는 제 손에 의해 문을 열었다.
주인 없는 카페
; 그곳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카페의 위치는 상가 쪽이었지만 이미 출근길과 등굣길을 오른 후의 시간인지라 비교적 손님이 적었다. 심심 할 법도 했지만 이즈미는 적당한 나른함이 있는 늦은 오전의 한가함을 즐겼다. 밀린 SNS 확인과 해야 할 스케쥴에 대한 준비 등 제 취향에 맞는 잔잔한 음악을 배경에 두고 미리 만든 따스한 음료를 호록, 마시며 제 일에 집중했다. 이따금 가게로 오는 혹은 지나쳐가는 도중 느껴지는 인기척에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어 너른 유리창 너머를 흘낏 쳐다보았지만 매번 꽝. 다시 몰려오는 실망감이 이즈미의 한숨을 무겁게 만들었다.
“진짜 짜증나.”
처음 주인인 그, 츠키나가 레오를 보았던 날은 감독과의 의견이 맞지 않아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끝내고 왔던 날로, 몸은 물론 심적으로도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는 속이 풀리지 않을 것을 알아 밤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금방 후회했다. 한 잔임에도 불구하고 한 끼 식사보다 높은 열량을 가지고 있는 메뉴들의 향연.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도 제한된 선 안에 들어가는 목록은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들 뿐.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들에 더욱 스트레스가 쌓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붙들렸다.
“거기!”
어디서 튀어나왔을지 모를 사람.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카페의 직원인 듯 했다.
“잠깐 괜찮으면 아까처럼 고민하는 모습으로 서 있어주라!”
“하아?”
“지금 떠오르는 악상을 적어내리지 않으면 국가적 손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사라지기 전에 얼른 옮겨둬야··· 펜, 펜이 어디로 갔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인상이었다. 사람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는 모습 그리고 예의라곤 없는 말투까지. 이즈미의 마음에 차는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귀에. 오른쪽 귀에 꽂아뒀네.”
하지만 허둥거리는 모습에 안쓰러움이라도 느낀 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도움을 주었고 도움을 받은 이가 터뜨린 호탕함은 이젠 밉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저와는 완벽히 다른 타인이라 호기심이 동할 정도.
“와하하핫! 이렇게 술술 써지다니. 넌 외계인이 보낸 천사가 분명해. 어떻게 보고만 있어도 귓가에 선율이 흐를 수 있지? 이름이 뭐야?”
“···세나.”
“세나? 이름도 예쁘네.”
호기심이 동하니 그를 관찰하게 되었고 곧 저를 향해 서슴없이 하는 자신만의 칭찬은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닌 꽤 깊은 진심으로 들리고 버릇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쁘다는 말이, 그리 나쁘지 않게 들렸다.
이즈미는 자꾸만 제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를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의 틈이 생기면 휴식보다는 카페를 다녀갔다.
“세나!”
늘 저를 반가워하며 맑게 웃어주는 모습이 열이 되어 가슴에 스며들었고 곧 호감으로 바뀌어 탐스러운 멍울을 맺었다. 하지만 품고 있는 호감을 제대로 표하지 않아서인지 외사랑은 자신보다는 가게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빗나간 판단에 가게를 봐주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이즈미는 담고 있는 감정을 표하려는 진심을 꾹 삼켜내었다.
잠깐의 정적. 차분함이 잠시 멀어졌던 이성을 불렀고 곧 그러는 편이 훨 얼굴 보기 쉽겠다는 생각이 찾아와 그렇게 하겠다는 답으로 카페를 떠맡게 되었다. 핑계를 대지 않고 얼굴을 보러 올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 이제는 골머리를 썩히지 않고 마음대로 그를 보러 올 수 있다는 것이 좋아 콧노래가 흥얼거리게 되었지만 그것은 이즈미 혼자만의 착각.
“잠시 다녀올게!”
제가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감을 찾아 밖으로 나도는 뒷모습이 가끔은 야속했지만 그 서운함만큼 제게 돌아오는 그의 표현력은 가히 아름다워 빈 마음을 채우기에 적절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왔어요.”
“오늘도 세나는 아름다움이 어울리는 모습이군.”
“응응. 오늘도 세나는 예쁘다!”
그렇다고 여겼다. 허해지는 속을 그의 손이 탄 형체들로 충분히 이해하고 기다려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몸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지만 그것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간 몸도 가까이 닿을 것이라고. 하지만 혼자 좁히는 거리는 무리가 있었고 더불어 그 사이로 자꾸만 들어오는 새로운 사랑들이 가는 길을 자꾸만 방해했다. 언젠가부터 카페를 찾아오는 미성숙의 상징인 교복을 입은 학생들. 오늘은 특히나 제 사랑과 비슷한 말들을 하는 이들의 방문에 벌써부터 자리를 비운 그가 보고 싶어졌다.
“매번 돈이 어디 있다고 와. 그리고 너희, 아이돌이라며. 이렇게 시간 써도 되는 거?”
“잠깐 있다가 가는 걸요?”
“그렇다! 아이돌도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다.”
“화내는 모습 역시 아름답군. 역시 세나는 아름다움에 부합한 이 인게야!”
그리움이 담긴 간절함이 커져 책임지지 못할 유혹에 빠질까 싶어 쫓아내려 들었지만 어떠한 말을 해도 물러날 기세가 없는 고교생들이라 이즈미는 아예 등을 돌렸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함께 있으면 하염없던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잘 흘러갔다. 그래서 그대로 뿌리 내린 마음까지 흐를까 싶은 불안함이 자꾸만 한 구석에서 몽글거려 편치 않음을 퍼뜨렸다.
“언제 오려나.”
오늘은 빨리 와주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버틸 여력이 남아있지만 언젠가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즈미는 부러 그가 저를 생각해 쓴 곡을 틀었다. 얼른 와, 바보. 제 신호가 그에게 닿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