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입장문 2019. 5. 9. 19:58

황흑전력 60분 217회, 여우비

 


 

 

 

 

 

 

 

 

 

 

너른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의 눈부심에 몇 번 뒤척거렸다. 귀가 밝은 동거인이 놓칠리 없는 움직임. 언제나처럼 기운찬 아침인사가 들려오길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의 인사는 들려오지 않았다. 제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다 지쳐 아래층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숨을 죽이고 귀를 예민하게 만든다.

 

 

 

 

 

“······.”

 

 

 

 

 

잠에 든 사이 잠깐의 외출이라도 한 것인지 들려오는 소리는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잔잔한 백음 뿐. 쿠로코는 이 한가한 오후의 시간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늘만은 이 집에서 원래 살고 있던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기회. 거기까지 생각하니 감겨오던 눈이 말똥해지고 정신까지도 또렷하게 돌아온다. 조금 더 말끔한 상태를 위해 화장실로 가 찬물을 얼굴에 끼얹는 고양이 세수만 하고 나왔다. 완벽하게 씻지 못한 것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함께 살고 있는 이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에 행동을 서둘렀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쿠로코는 그가 마련해준 옷을 벗었다. 그리고 한 쪽에 잘 개어두었던, 처음 이 집에 온 날 입었던, 자신의 옷을 껴입고선 현관으로 내려갔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까치집 진 머리를 꾹꾹 누르는 것도 잊지 않고.

 

큰 호흡 후 현관문을 나서니 기다렸다는 듯 갑작스럽게 내리기 시작한 비. 이제 떨어진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정도로 점점 그 세기가 강해져 그대로 걸음이 묶여버렸다.

 

 

 

 

 

“오늘은 정말 돌아가려 했습니다만······.”

 

 

 

 

 

방금까지는 맑았던 청명한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구멍이라도 난 듯 후두둑, 떨어지는 이상 현상은 언제 보아도 신기한 현상이지만, 내리는 이유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쿠로코는 감탄사 대신 한숨을 포옥 쉬었다.

 

 

 

 

 

“정말 너는 신이 확실하군요.”

 

 

 

 

 

오늘도 돌아가는 일은 그른 것 같다.

 

 

 

 

 

 

 

신과 함께

; 그와 함께 한 순간들

 

 

 

 

 

 

 

벌써 이 집에 온 지도 한 달 하고도 조금 더. 정확히 센 날짜가 아니었기에 미세한 오차가 있을 순 있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마만큼 오랜 시간을 집 떠나있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꽤나 긴 시간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은 지금쯤이면 함께 살아가던 마을의 누군가가 쿠로코의 부재를 눈치를 채고도 남았을 시간. 하지만 오늘도 숲은 평소와 같이 잠잠하다. 새와 풀벌레 따위들의 노래 소리만 가득 엉켜 평화로운 풍경에 문득 제 존재가 이미 잊혀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기척이 옅어 자주 잊어졌지만 쿠로코 나름대로 마을에서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인사성이 나쁜 것도 아니었기에 이웃과도 원만하게 지냈고 두 달 전 이사 온 제 또래, 카가미와도 친분을 쌓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인지 그 누구도 ‘쿠로코 테츠야’ 라는 사람을 찾지 않았다. 외면하고 있던 사실을 마주하니 입 안 가득 씁쓸함이 밀려오는 터라 냉수 한 잔을 벌컥 들켰다. 그리고 여전히 못마땅하게 쳐다보면서도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남자, 키세 료타에게 컵을 건넸다.

 

 

 

 

 

“키세 군도 마실 겁니까?”

“마실 기분 아닙니다.”

 

 

 

 

 

나 삐졌어요, 하고 서슴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영락없는 미운 일곱 살이었지만 실상은 70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온 신이였다. 그것도 맑은 날에 멋대로 비를 내릴 수 있다는 설을 가진 여우 신. 그런 그와의 처음은 오늘처럼 맑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당시 쿠로코는 좋은 볕을 쐬기 위해 가벼운 복장으로 집과 가까운 뒷산에서 산책을 하던 중이었고, 때문에 비를 피할 만한 도구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더 젖기 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돌렸지만 어느 정도 깊게 왔는지 돌아가는 길목이 멀리서 보였다. 더불어 이제 시작된 비는 그칠 기미는커녕 더욱 거세게 내리는 것에 쿠로코는 어쩔 수 없이 파릇하게 자라난 나무들 아래로 숨었다.

 

무성하게 자라난 잎사귀와 굵게 뻗은 가지에 나무는 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랬기에 쿠로코 홀로만 비를 피하고 있던 나무가 아니었다. 산신이라고 알려진 여우 신, 키세 료타가 진즉 자리 잡았던 나무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쿠로코는 어디에서 스치듯 들었던 지금 내리고 있는 ‘여우비’ 에 대한 설화가 생각나 “여우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라는 실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와 연결고리를 맺어주는 첫 단추가 되어버렸다.

 

 

 

 

 

“당신,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네?”

“방금 여우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지 않슴까? 그랬잖슴까!”

“아, 네··· 뭐. 그런 말을 했죠. 그런데 왜 당신이···”

“제가 그 ‘여우’ 니까요.”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이 ‘여우’ 라고 하는 남자를 찬찬히 훑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쿠로코 자신과는 다를 바 없는 사람 형색이라 어딘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시선을 정확하게 꿰뚫은 남자는 “믿지 못하는 검까?” 라는 말과 함께 머리 위로 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귀를 내보이고 털이 풍성한 꼬리까지 보여주었다.

 

 

 

 

 

“이제 믿습니까? 제가 여우라는 거.”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제 정체를 밝히는 것이 더 의심스러웠다. 어떠한 방법으로 솟게 만들었을까? 사실이 확인하고 싶었던 쿠로코는 계속해서 쫑긋거리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귀 쪽으로 손을 뻗었고, 곧 그 손은 꼬리에 의해 내쳐진다.

 

 

 

 

 

“아···, 미안합니다.”

“인간은 다 그렇슴까? 의심이 많슴다!”

 

 

 

 

 

부연설명 없이도 쿠로코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 챈 남자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팔짱을 꼈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불쾌함을 서슴없이 드러내는데, 쿠로코는 왜인지 억울한 기분이 잔뜩 들었다. 먼저 대화를 이어간 것도 저쪽이고 또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을 억지 부리는 것도 저쪽.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쿠로코는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말을 결국 터뜨렸다. 여전하게 불쾌감을 표하는 남자에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정말 사람이 그렇게 살면··· 네?”

“어디서 나타났을지 모르는 사람이 여우냐고 하질 않나, 여우처럼 귀와 꼬리가 달린 모습을 보여주질 않나. 제가 의심하는 이유는 당신 탓도 있단 말입니다!”

 

 

 

 

 

당황한 모습을 보니 오히려 용기가 났다. 쿠로코는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뱉었고 남자는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충격을 받았는지 잠깐, 이라던지 잠깐만, 이라는 말만 짤막하게 반복 했다. 그에 비해 속이 후련해진 쿠로코는 할 말도 했고 처음보다 얇아진 빗줄기를 보았기에 계속해서 남자를 상대 해 줄 필요가 없었다. 흘낏 본 남자는 제 반격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 쿠로코는 이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질게 변한 땅을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지려고 했다.

 

 

 

 

 

“···뭡니까.”

 

 

 

 

 

황급히 제 어깨를 잡아 몸을 돌리는 남자의 손이 없었더라면.

 

 

 

 

 

“하아··· 정말. 이 모습까지는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잘 보십쇼. 그리고 내가 여우라는 걸 알게 되면 책임져야합니다.”

“잠시 만요. 제가 왜 책임을···”

 

 

 

 

 

방금 제가 할 말을 쏟았다고 그러는 것인지 이번엔 제 할 말만 늘여놓곤 남자는 사라졌다. 역시, 눈속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군요. 처음 만나는 입장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대화를 시작한 시점부터 쿠로코는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믿지 않았다. 그랬기에 어떠한 방법으로 제 시야에서 사라진 남자를 찾아 그만 자신을 놀리라는 말을 쏘아주곤, 다시는 이렇게 사람을 상대로 장난을 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할 심산으로 그를 찾았다.

 

보여 지던 체격으로는 단번에 먼 곳으로 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젖은 땅에서 움직이면 발자국이 남을 터. 쿠로코는 선명하게 찍혔을 남자의 발자국을 찾기 위해 바닥을 내려다보았고, 마주했다.

 

 

 

 

 

“여우······?”

“이제 믿으시겠슴까?!”

 

 

 

 

 

옅은 노란색, 아니 금색이라고 해야 맞을까. 잘 관리되어서 윤기가 흐르고 조그마한 빛에도 반짝거리는 털을 가지고 있는 생물은 분명 여우였다. 그것도 아까 대화를 하던 남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우. 쿠로코는 정리되지 않는 현실들이 마구마구 달려드는 것이 복잡해 머리를 짚었다.

 

 

 

 

 

“괜찮슴까? 이래서 내가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당신 정말···”

“여우임다. 정확히는 여우 신, 키세 료타 라고 합니다.”

 

 

 

 

 

제 소개를 한 여우, 그러니까 키세 료타 라는 이름을 가진 여우 신은 처음 만난 남자의 형색으로 돌아왔다. 정말···, 여우였습니까? 얼떨떨함이 더듬더듬 되묻게 했고 신, 키세는 이제야 제 손에 주도권이 쥐어졌다는 것에 만족이 가득 퍼진 얼굴로 속삭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신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시간입니다.”

 

 

 

 

 

뭐라고 반박할 새도 없이 허리가 단단한 팔에 감겼다. 그리고 어떠한 저항도 한 번 못해보고 그대로 이 집에 묶이게 되었다. 여기저기 눈이 닿는 곳마다 푸르름이 가득한 산 속은 좋았지만 쿠로코에게는 생활이라는 것이 있었다. 저 마을에서 꾸려가고 있던 생활. 뿐만 아니었다. 신이라는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감히 어떤 앞날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기에 하루는 돌아가겠다는 말로, 하루는 돌아가겠다는 걸음으로, 또 하루는 만났다는 사실을 가지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때마다 번번이 이기는 쪽은 여우 신, 키세 쪽이었지만, 쿠로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3일에 걸친 긴긴 싸움으로 키세는 알았다. 이대로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0,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그래서 제안했다.

 

 

 

 

 

“딱 한 달. 저랑 같이 살아봐요.”

“싫습니다.”

 

 

 

 

 

싫다는 반응이 나올 줄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민도 없이 즉각적으로 나온 부정은 입 안을 쓴맛을 돌게 만든다.

 

 

 

 

 

“알아요. 당신이 나와 같이 살 이유도 없고 엮일 필요도 없다는 거.”

“······.”

“그래도, 나는 처음이었단 말이에요. 내 행복을 바래주는 이가 있다는 걸 안 건.”

 

 

 

 

 

마주하며 진심을 꺼내는 황색의 눈에는 거짓이 없었다. 대신 외로움만이 가득 차올라 일렁이고 있을 뿐. 쿠로코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키세를 품에 안았다.

 

 

 

 

 

“그간 홀로 잘 커왔네요.”

 

 

 

 

 

포용력 있는 말과는 다르게 체격 차이 때문에 쿠로코가 키세를 안아주는 것보다는 안겨있는 꼴이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키세는 천천히 퍼지는 온기를 놓치기 싫어 제 팔을 쿠로코의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 제 품의 틈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꽉, 안았다. 쿵쿵.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는 체온이 따뜻하다.

 

 

 

 

 

“딱 한 달.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거부할 수 없게끔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체온의 힘은 강했다. 굳어있던 마음을 녹였고 거절만 하던 입에서는 허락의 말을 꺼냈으니.

 

 

 

 

 

“···정말여? 정말이죠? 지금 그 말 무르기 없슴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김을 당했지만 쿠로코는 억지로 키세를 떼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온전히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가만히 있어 줄 뿐.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과의 동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 지붕 살이는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맞춰주는 신의 노력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던 쿠로코였지만 적응의 동물답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호의에 익어갔다. 그래서 가끔 잊었다. 제가 떠나야 할 시간에 대해. 그랬기에 오늘,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했지만 완벽하게 저지당했다.

 

 

 

 

 

“또 생각했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또 읽었죠. 내가 읽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말이죠.”

“그, 그건 다 쿠로콧치 때문···”

“한 달.”
“윽.”

 

 

 

 

 

스스로가 판 굴을 밀어보이니 더 이상 부딪히지 않는다. 대신 목덜미에 제 얼굴을 묻고 부빗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늘 같은 패턴. 넘어가서는 또 같은 하루를 보내야 했기에 쿠로코는 단호하게 무시했다.

 

 

 

 

 

“약속 한 날이 지나서 돌아가겠다는 것뿐인데 언제까지 어리광 부릴 겁니까?”

“쿠로콧치는 나랑 있는 거 좋지 않았어요? 무려 신과 함께 사는···”

“그래서 돌아가는 겁니다.”

 

 

 

 

 

조금은 강하게 내쳐야 신과의 인연이 끊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러 모질게 말을 했고 다시 징징거릴 키세의 말에 받아칠 말을 준비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키세는 아무런 말이 없다. 말에 수긍하는 것일까. 쿠로코는 살며시 시선을 그에게 두었지만 뒤에 위치한 그의 얼굴표정을 살피기에는 어려워 몸 전체를 돌려 마주하니 처음 본 얼굴이 있다.

 

 

 


“키세 군······.”

“정말 나 때문에 가는··· 겁니까······?”

 

 

 

 

 

말이 꽂혀 들어간 곳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눈물샘까지 파편이 튀었는지 뚝뚝, 큰 눈에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눈물이 떨어지고 다시 차오른다.

 

 

 

 

 

“나는 쿠로콧치랑 있어서 좋았습니다. 쿠로콧치는 안 그랬습니까?”

“저는···”

“나는 처음부터 당신이 좋았는데, 당신은 여전히 나를···”

 

 

 

 

 

이후의 말은 듣지 않아도 알았다. 키세 역시 스스로 단정 짓기 싫어 말을 멎는다.

 

 

 

 

 

“그게 아닙니다.”
“······.”

“저도 당신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어떻게 미련 없이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럼 왜─!”

“저도 정리라는 것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어떻게, 왜 정리 한다는 것인지 키세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니,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좋을 때로 해석해도 되는 걸까. 키세는 여전하게 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물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호수가 펼쳐진 그곳은 키세 료타, 저 하나 뿐.

 

 

 

 

 

“쿠로콧치······.”

“그러니 보내주시겠습니까?”
“그런 거라면 당연히 보내주지만··· 그래도 역시 마을에 있는 것이 좋다고 마음이 바뀌면 어떡함까?”

 

 

 

 

 

참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다 자신에 의해 생겨난 걱정임을 알고 있기에 쿠로코는 그에게 밖에 반응하지 않게 된 심장 위로 키세의 손을 끌어다 놓았다.

 

 

 

 

 

“쿠로콧치?!”

“느껴지십니까?”

“······.”

“이렇게 만든 상대를 두고 어떻게 혼자 살 수 있겠어요.”

 

 

 

 

 

쿠로코의 진심이 담긴 불규칙한 고동소리는 곧 키세의 심장 박동수에 영향을 끼쳤다. 누가 더 빨리 뛰는지 모르는 쿵쾅거림. 그대로 입술이 맞닿아 제대로 그들의 마음이 담긴 숨결이 섞인다.

 

 

 

 

 

“평생 안 놔 줄 거예요.”

 

 

 

 

 

행복에 겨운 숨결이 다시 한 번 섞이고 떨어진다. 붉게 오른 두 사람의 볼처럼 무르익은 하늘은 신이 퍼붓는 애정의 시간을 버텨내지 못하고 서둘러 까만 물감을 퍼뜨린다. 잔잔히 어둠이 깔리고 그 사이에서 가장 환한 빛을 내는 오두막. 그곳에서는 오늘도 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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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장문 2019. 5. 5. 17:00

청흑 전력 60분 107회, 봄비


 

 

 

 

 

 

 

 

 

 

 

두터운 옷들을 겨우 벗어내나 싶었더니 지난밤부터 부슬부슬,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에 아오미네는 상자 속을 뒤적였다. 곧 잘 개어 둔 카디건을 찾았고, 그것을 꺼냈다. 엉성하기 짝이 없게 얽히고설킨 카디건은 소꿉친구인 모모이 사츠키가 사춘기 시절 며칠 밤을 새워가며 서투름이란 서투름을 잔뜩 넣어 떠주었던 옷. 물론 제게 준 옷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입고 싶어 아오미네는 눅눅하게 앉은 먼지를 한 번 털어내고 대충 몸에 걸쳤다.

 

 

 

 

 

“역시 작네.”

 

 

 

 

 

맨 살에 까끌하게 닿는 옷은 떨어졌던 체온을 금방 높여주었다. 하지만 제 옷이 아님을 알려주는 껑충 뛴 소매와 겨우 맞는 어깨에 불편함이 쌓이고 주인에 대한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굴어 결국 벗었다. 아마도 남겨진 미련이라는 것이 헤집고 다녔기 때문일 터. 정리되지 않는 머리가 곧 마음도 흐트러지게 한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지금 제게 찾아온 자극을 잊기 위해 새로운 자극을 찾던 아오미네는 창 너머를 바라보다 곧 우산을 챙겨들었다.

 

 

 

 

 

 

 

Rainy Day

; 비 온 다음 굳은 관계

 

 

 

 

 

 

 

아무런 계획 없이 나온 터라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우산으로 가려진 시야가 더욱 상념에 젖게 만들고 정처 없는 떠돌이의 발걸음은 계속해서 본능에 의지해 걸었다. 그랬기에 조금씩 아는 길로 걷게 되었고 곧 근처가 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의 거처임을 알았을 때, 맞닥뜨린 길목. 곧장 걸어가면 그의 집 앞임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곳으로 가려는 아오미네를 차갑게 말리는 이성이 겨우 걸음을 멎게 했지만, 그것은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이별을 경험한 후부터 꾹꾹 누르고 있던 욕심이 한 번쯤은 괜찮지 않냐는 속삭임으로 아오미네를 유혹했고 이미 흔들릴 때로 흔들린 아오미네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가까워지는 목적지에 괜히 손에 땀이 베였고 만약이라는 상황들이 줄줄 꼬리를 물었다. 그것은 설렘으로 가슴을 뛰게 했고 또 걱정으로 바뀌어 머리를 아프게 했다. 끝과 끝을 오가는 감정의 변화 속 걸음은 더뎌지지 않고 오히려 빨라진다.

 

 

 

 

 

“······.”

 

 

 

 

 

숨이 조금은 가빠질 즈음 도착했다. 매번 헤어지기 아쉬워 서성거렸던 담벼락이 눈에 들어오고 이어 처음 숨결을 나누었던 가로등 아래, 그리고 기대감을 안고 넘었던 대문까지. 밀려오는 과거에 왈칵 감정이 올라왔고 비워진 곁이 내리고 있는 빗물에 잔뜩 젖어버렸는지 사무치게 시리다.

 

 

 

 

 

“!”

“!”

“아오··· 미네 군···?”

 

 

 

 

 

오는 길에 생긴 걱정은 모두 마주칠 수도 있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그 걱정이 불러 온 상황인지 정말로 마주쳐버렸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지? 서둘러 우산으로 얼굴을 가렸다. 잔뜩 무너진 모습으로 청승맞은 꼴을 보이는 건 아오미네 스스로의 자존심이 허락 하지 않았다. 이상의 나약함이 청승맞아 들리지 않은 척 서둘러 돌아가려는데, 묶이고 말았다. 옛 기억은 물론 옛 추억 그리고 옛 연인에게.

 

 

 

 

 

“아···, 테츠.”

“···오랜만이네요.”

 

 

 

 

 

다가오는 거리감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시선을 부러 빗겨 깔았다. 그 탓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산을 잡고 있는 손을 보게 되었고 이미 그의 옆자리는 채워진 찰나인지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 ······그러게.”

 

 

 

 

 

여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저와 달리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첫 사랑. 정말 기억 저 너머로 남겨두어야 하는 상황에 더 이상의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그냥. 지나가던 길이였어.”

“···그렇습니까.”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애를 쓸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는 새로운 만남을 하고 그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새롭게 펼쳐지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니.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만약이라는 덧없는 희망을 갖게 했고 그럴수록 이미 종지부를 찍은 연인사이임을 통감하게 만든다.

 

 

 

 

 

“그럼.”

 

 

 

 

 

표현하지 못한 말이 가득해 걸음이 무거웠다. 그만큼 마음 속 깊게 담았기 때문임을 아는 아오미네는 더욱 아무렇지 않게 보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저한테 정말 볼 일이 없는 겁니까?”

“······.”

“정말··· 정말 그렇게 갈 생각입니까?”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연을 가장한 만남은 이것이 마지막임을 느낀 것인지 상대 쪽에서 먼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민다. 잡아도 되는 걸까. 이때까지 미루어 본 행동으로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하게 내밀고 있어주고 있는 손에 아오미네는 좋은 쪽으로 마음이 부풀었고 남아있는 용기를 모두 꺼내 내밀고 있는 손에 깍지를 껴주려니 벌써 상대는 도착해있다.

 

 

 

 

 

“당신은 정말 바보입니다.”

“윽, 테츠···”

 

 

 

 

 

콩, 하고 부딪힌 가슴팍이 아팠다. 아릿하게 퍼지는 알싸함은 달갑지 않았지만 부비적하며 스며드는 온기가 이어져 금방 잊게 된다. 따뜻함만 남은 공간. 그대로 품에 들어 온 그를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안았다.

 

 

 

 

 

“매번 이런 식이죠. 내가 왜 카디건을 두고 갔는데! 왜 이사도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고작 저기서 여기까지의 거리지만 빗줄기에 젖어 보여주는 얼굴이 엉망이다.

 

 

 

 

 

“미안.”

“그렇게 또 넘어가려고 하지 마세요!”

“정말 미안해.”

 

 

 

 

 

다시 한 번 콩, 부딪힘이 일었고 달래는 일에 서툰 아오미네는 계속해서 사과의 말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제 어깨에 얹은 손의 반지가 보여 그를 잠시 떼어놓는다.

 

 

 

 

 

“그렇지만···, 너 사귀는 사람이 있는 거 아니야?”

“······너는 정말······.”

“테···츠······?”

“없습니다! 너는 스스로 끼워 준 반지도 기억하지 못합니까?!”

 

 

 

 

 

당신은 정말 바보입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하다. 너도 계속해서 제자리였구나. 혼자서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까. 터져버린 감정 속에는 원망이 많았지만 곧 좋아함으로 바뀌어 가슴에 떨어진다.

 

 

 

 

 

“역시 테츠밖에 없는 것 같아. 나는.”

 

 

 

 

 

응어리져 있던 감정이 풀어져 더욱 단단하게 서로에 대한 감정으로 굳으니 쉬이 그치지 않을 비 역시 서서히 그쳐간다. 곧 따사로운 해가 살며시 얼굴을 비추며 비 온 뒤 특유의 산뜻함이 가득 머금어진 공기가 온기를 타고 선선하게 불어온다.

 

 

 

 

 

“···집으로 갈까? 테츠가 해주는 밥, 먹고 싶다.”

“너는 정말···”

“좋아해, 테츠. 정말로.”

“······나도요.”

 

 

 

 

 

완연한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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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장문 2019. 5. 1. 19:37

트위터에서 아츠른을 주제로 간단하게 커플별 상황을 썼던 썰 모음

2017.10 ~2018.05까지의 모음


 

 

 

 

 

 

 

 

 

 

아츠른 추석

 

다자아츠 - 고생했다고 안아주니 그대로 빈방으로 옮겨진다
츄아츠 - 어깨라도 주물러줄까 뒷자석에 가 앉으니 서운한기색이 영력해보이는것에 다시 조수석에 돌아와버렸다
아쿠아츠 - 첫 인사에 빠짝 얼어있다 돌아오는길에서야 풀려 차 막힌 틈에 뽀뽀뽀

 

 


아츠른 떨어지는 낙옆을 잡으면

 

다자아츠 - 속설을 알려주었더니 단풍하나가 코팅되어 서류귀퉁이에 꼽혀있다
츄아츠 - 속설은 믿지않지만 내심 아츠시가 잡아주길바라며 중력조작
아쿠아츠 - 허망된 것에 시간낭비하는 모습 마음에 들지않아 괜히 낙옆무더기를 들쑤신다
떨어지는 낙엽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대요!

 

 

 

아츠른 헤어졌어요

 

다자아츠 -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밤만 되면 구질한 전남친이 되어버리는 두 사람
츄아츠 - 깔끔한 관계정리로 추억으로 남은 두 사람
아쿠아츠 - SNS염탐 등으로 은근히 신경쓰고 있는 두 사람
루시아츠 - 친구보다 못한 두 사람

 

 


아츠른 추운날 데이트

 

다자아츠 - 따자코트 안에는 두 사람이 있어
츄아츠 - 자동차 데이트도 좋지만 역시 집이 최고지
아쿠아츠 - 문자로는 서로 오라했지만 중간지점에서 만나버렸어
후쿠아츠 - 사장실이 곧 찻집이고 집이야
쿄카아츠 - 아츠시를 춥게하는 찬바람 모두 내가 베어버리겠어

 

 

 

아츠른 나이별 데이트

 

다자아츠 - 아이같은 어른과 어른같은 소년의 낮져밤이 데이트
츄아츠 - 어른의 연애란 이런거구나하는 현내기와 새내기 데이트
아쿠아츠 - 밥먹고 영화보고 차마시며 이따금 노래방도 가는 흔한 반도 고교생 데이트

 

 

 

아츠른 시험기간

다자아츠 - 족보를 얻기위해 온 선배의 자취방에서 벌써 3일째 머무는 중입니다.
츄아츠 - 간질간질한 도서관 혹은 카페 데이트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엇갈림 뿐
아쿠아츠 - 점수 경쟁을 할건지 서로 챙김을 할건지 하나만 골라서 해라 제발
현실아츠 - 종강..기...원.....주겨...조..

 

 

 

아츠른 or 여츠른 그날이야?

 

다자아츠 - 직접 확인
츄아츠 - 어설픈 다정함
아쿠아츠 - 아쿠가 잘못했네
쿠니아츠 - 날짜확인
타니아츠 - 동생 덕에 완벽한 보살핌 가능
모리아츠, 요사아츠 - 각종 의학지식으로 천국과 지옥을 넘나든다
코요아츠 - 누님 손과 품이 만병통치약

 

 


아츠른 연애경험

 

다자아츠 - 다자이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가끔 여유없음
츄아츠 - 첫이 들어간 것은 다르지만 끝이 들어간 것은 같음
아쿠아츠 - 살기바빠 경험도 못했지만 미운 정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
타니아츠 - 적은 경험으로 서로의 연애상담 해주다 엮임

 

 

 

아츠른 잘 잤어?

 

다자아츠 - 여긴 어디고 옆에 있는 남자는 대체 누구? 와중에 허리가 시큰거린다.
츄아츠 - 먼저 깨서 자는 얼굴을 훔쳐보다 눈이 마주쳐 아침부터 심장 쿵!
아쿠아츠 - 아침 해 먹어야지, 하고 부엌에 있다 인기척에 인사해줬더니 라쇼몽이 침대로 델꾸감

 

 

 

아츠른 오늘은 19금

 

다자아츠 - 뛰는 아츠시 위 나는 다자이
츄아츠 - 당기려는 아츠시와 밀어내는 츄야
아쿠아츠 - 시그널 보내는 아츠시와 인식 불가 아쿠타가와
모리아츠 - 언지주는 모리와 미끼물고 유혹하는 아츠시
요사아츠 - 센세와 함께하는 특별한 성교육
쿠니아츠 - 내게 오늘은 그저 금요일일뿐

 

 

 

아츠른 SNS_짹짹이 편

 

22다자아츠 - 분명 아츠시의 계정이지만 아츠시의 것 같지않는 아츠시의 계정
18다자아츠 - 초창기 구독계로 요즘은 아무말에도 마음대잔치
츄아츠 - 탐라 너머 사람으로 하루하루 내적 친밀감이 쌓이는 중
아쿠아츠 - 언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는 프로 사찰러

 

 

 

아츠른 s signal

 

다자아츠 - 일거리가 많아지며 그것을 모두 다 끝내고 나면 둘 만 남아 야근을 하고 있다
츄아츠 - 며칠 전부터 자꾸 시간이 괜찮은지 확인하는데 특히 다음 날도 쉴 수 있는 날이 언제냐 묻는다
아쿠아츠 - 그런 거 없다. 한창인 나이들

 

 

 

아츠른 식곤증

 

다자아츠 - 꾸벅꾸벅 잠기운에 늘어지는 것이 귀여워 건드렸다 결국 격리조치
츄아츠 - 일부러 주변을 빙빙 돌면서 탐정사로 들어보내지 않음
아쿠아츠 - 관심없는 척 퉁퉁거리지만 손은 이미 머리칼 위
켄지아츠 - 둘 다 들어오지 않아 찾으러 가니 식당 탁자에 나란히 엉켜 낮잠 중

 

 


아츠른 술김에

 

다자아츠 - 다자이의 잘생김 인정과 필름 끊긴 얼룩덜룩한 하룻밤
츄아츠 - 정곡을 쑤시지만 마음도 쑤시는 아츠시의 무한매력의 퍼레이드
아쿠아츠 - 싫다고 말하지만 어째서인지 말할수록 싫다, 라는 말이 부끄럽고 또 창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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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장문 2019. 4. 14. 22:45

 

 

 

 

 

오늘따라 주파수가 맞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니, 본래부터 다자이 오사무와 나카지마 아츠시는 그들에게 꼭 맞는 톱니바퀴는 아니었다. 생긴 외모부터 시작해 성격, 그리고 타고 난 이능력까지. 끝과 끝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관계성을 가진 두 사람이었지만 나카지마는 오늘따라 다자이에게서 저와 다른 기척을 느꼈다.

 

 

 

 

 

“······.”

 

 

 

 

 

아무리 다르다고 해도 어느정도는 읽을 수 있는 표정부터 시작해 보이지 않는 기분은 물론,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는 대화까지도 나카지마는 날 때부터 익힌 익숙한 단어들로 하나 둘 세심하게 배열하여 최대한 상황에 알맞은 문장을 만들어 갔지만, 그것은 제 자신만의 착각인지 돌아오는 대답은커녕 제가 하는 말조차도 낯설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정말 같은 것을 보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 맞을까.

 

 

 

지금은 없지만 후에는 가져야 할 달짝한 간지러움을 가진 언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른 숨의 정적이 자꾸만 길어진다. 이대로 계속해서 숨결만 고르다간 많은 것을 놓쳐버릴 것 같은 기분.

 

 

 

 

 

“저···, 다자이 씨.”

 

 

 

 

 

시작도 전에 잘려나가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이야기하게 되어있는, 나카지마 자신이 그, 다자이 오사무에게 가진 마음을 잘라내지 않은 한 다루어야 할 주제에 한 달음에 달려 온 지금, 그 순간의 찰나를 멈추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는 단순한 호칭의 나열 뿐. 잠깐의 시간을 벌었지만 그것은 정말 시간벌기의 공백.

 

 

 

 

 

“산책이라도 하지 않으실래요?”

“이 밤에 말인가?”

“······.”

 

 

 

 

 

거절이 따라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반문에 나카지마의 입술이 꽉 깨물렸다.

 

 

 

 

 

“좋지. 산책이란 요란스럽지 않은 정도가 좋으니.”

 

 

 

 

 

다행히도 허락의 의미가 뒤따라왔다. 긴장한 만큼의 숨이 땅으로 가볍게 떨어졌고 나카지마는 금방 기운을 찾아 겉옷을 챙겨들었다. 갈까요? 첫 단추만큼의 무게는 아니었지만 나아가기 위함으로 쓰일 불씨였기에 꺼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꽃이 많이 폈군.”

“봄이 오긴 했나 봐요.”

 

 

 

 

 

많은 일들이 탐정사를 훑고 지나갔지만, 요즘은 풀어진 날씨 때문인지 대체로 사무실에 있었다. 요코하마가 평화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지만, 그로인해 바깥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이 없던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미루고 머물고 있는 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온화함을 담은 온기에 살랑거리며 봄이 왔음을 한 번 더 알려주는 파릇함들.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을 보다보니 어떠한 일, 그러니까 나카지마 아츠시의 마음속에서 피어난 다자이 오사무라는 꽃을 꺾어 본래의 주인에게 심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앉았다 갈까?”

 

 

 

 

 

그건 다자이도 감지한 내음일까. 가로등의 빛이 쏟아지는 나무 의자를 가리키며 준비를 도와주는 권유에 나카지마는 사양하지 않았다. 적당한 걸음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라.”

 

 

 

 

 

여느 때와 같이 여유롭게 말을 되짚는 다자이의 목소리에 나카지마는 겨우 박자를 찾은 심장고동을 놓쳤다. 쿵쿵, 아니 쿵쾅쿵쾅. 귓가에는 이미 고동소리만이 가득했고 제가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지도 아득하다.

 

 

 

 

 

“좋아해요.”

 

 

 

 

 

의식하려고 조금 크게 목소리를 내니 가장 부끄러운 말을 듣고 말았다.

 

 

 

 

 

“제가··· 다자이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화끈하게 달아오른 볼이 뜨거웠지만 그것에 중심을 옮겨 고백을 미룰 순 없었다. 거절을 당하면 당한대로, 허락을 받으면 받은 대로, 감히 짐작 할 수 없는 열기가 볼에 열꽃을 피울 것이고 볼만큼의 여린 살결들 역시 피어난 열꽃에 붉어질 것이 뻔했기에.

 

 

 

 

 

“좋아한다, 라······.”

 

 

 

 

 

음미하듯 중얼거려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여유에 취해있었고 속이 후련해야 할 나카지마는 오히려 속이 타들어갔다.

 

‘나도.’ 와 ‘미안.’ 의 둘 중 하나. 나카지마 스스로가 던진 미래는 여전히 뱅글뱅글, 확실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벌써 까맣게 타들어 간 속내를 다시 한 번 어지럽게 헤집는다.

 

 

 

 

 

“그, 그렇게 오래 생각하시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저···”

“······.”

“해야 할 일을 미리 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기다림이 너무나도 지독해 계획에 없던 말을 횡설수설 늘여놓았다. 자신도 의심스럽고 그렇지만 막을 순 없을 경박한 몸부림.

 

 

 

 

 

“나는 오래 생각하고 싶다네.”

“···네?”

“아츠시 군이 이 말을 꺼내기까지 많이 고민했겠지. 또 그 마음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도 해보았을 것이고.”

“펴, 평가까지는─···”

“그 평가로 도출된 건 지금의 고백일 테고.”

 

 

 

 

 

화르륵. 이미 마음을 태운 열이 다시 불길을 일어 이제는 몸까지 태우려고 드는 기분이었다. 발간 꽃씨들이 콕콕 나카지마의 몸 곳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래서 나도 자네만큼의 시간을 사용해 진지하게 임하려 했지만 자네의 “좋아해요.” 라는 말에 바로 결론이 내려졌다네.”

“······말해주세요.”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매정하게 뱉어진 끝이라는 온점에 상처를 받아 그 치유의 시간이 길어도 나는 감내할 수 있다고 나카지마는 스스로를 어르고 달랬다. 금방이라도 흐를 눈물이 다지는 각오를 일렁이게 하지만, 눈꺼풀을 닫아내는 것으로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렀다.

 

 

 

 

 

“나 역시, 자네를 마음에 두고 있어.”

“네?”

 

 

 

 

 

감았던 눈이 저도 모르게 뜨여진 것은 정말, 정말로 믿지 않았던 행복한 결말 때문. 그 탓에 마르지 못해 고여 있던 눈물이 볼에 자국을 남기며 떨어졌고 다자이는 부러 유쾌하게 이야기를 덧붙였다.

 

 

 

 

 

“어쩐지 오늘따라 자네가 나를 너무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런 중대한 이유 때문이었나~”

 

 

 

 

 

그러나 이미 그때부터 한 사람에 대해 사랑으로 채워진 남자였기에 연인으로 마주하게 될, 그리고 하게 된 얼굴이 더는 울지 않게 달래주는 손길은 여유가 아닌 상냥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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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장문 2019. 4. 5. 00:05

너에게만 느끼는 감정

; 약간의 짜증과 간지러움, 과연 이게 무슨 감정일까.

 

 

 

 

 

 

 

 

 

 

나카지마는 그늘이 진 벤치를 흘낏 쳐다보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고집스럽게 수업을 참관하는 아쿠타가와가 눈에 들어왔고 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져도 이상 할 것 없어 보였다. 저러다 또 양호실 가지. 나카지마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 그리 생각하며 혀를 쯧 찼다.

 

 

 

 

 

“나카지마! 패스!”

 

 

 

 

 

마침 공이 제 쪽으로 굴러왔고 나카지마는 뻥, 세게 공을 차는 것으로 제게 잠시 머문 아쿠타가와의 얼굴을 걷어낸다.

 

 

 

알게 뭐야.

 

 

 

그는 언제나 제게 무심한 표정은 물론 정이 들지 않는 딱딱한 언행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그 언사 속에는 거칠고 따끔한 비방만이 존재하였기에 곱씹으면 씹을수록 화가 나고,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지마는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계속해서 아쿠타가와와 엮이고 그로 인해 달라붙는 시선과 관심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쿠타가와!”

 

 

 

 

 

신경이 쓰였다면 쓰였다. 그 사소한 거슬림 탓일까. 요즘은 오히려 간섭이 없는 그를 마주하면 저도 모르게 서운 한 감정을 느끼는 지경에 일러 나카지마는 스스로가 어색했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업을게.”

 

 

 

 

 

누구보다 먼저 아쿠타가와에게 달려 가 등을 내미는 제 자신이 낯설다.

 

 

 

 

 

 

 

* * *

 

 

 

 

 

 

 

아쿠타가와는 제 몸에 한계가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득하게 붙인 엉덩이를 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이명이 들려오는 순간에도 차근히 담아냈다. 특이하게 기른 옆머리를 찰랑이며 운동장을 누비는 흰색의 소년을. 그리고 그가 찬 공이 골대의 그물을 흔들었을 때, 눈이 마주치고 그대로 암전.

 

 

 

 

 

“···면 괜찮을 거야.”

“···렇군요. 그럼···”

“······부탁해.”

 

 

 

 

 

아직도 어지러운 머리에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누구인지는 단번에 알아 챌 수 있었다. 데리고 와 준 건가. 괜히 귀가 뜨겁다.

 

 

 

 

 

“하튼, 고집쟁이라니까.”

 

 

 

 

 

선생님과 대화를 마친 나카지마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아쿠타가와가 누워있는 침대의 커튼을 열었다.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꽤 조심스러운 손길에 아쿠타가와는 웃음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아냈다.

 

 

 

 

 

“몸도 약한 게. 아픈 걸 알면 사람이 조심을 해야지, 공부 잘한다는 거 다 거짓말이지?”

 

 

 

 

 

투정일까 아님 걱정일까. 혼자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달았다. 그리고 이내 그 달콤함에 빠져 다시 깊은 잠으로 이끌려 갈 때, 닿았다.

 

 

 

 

 

“네가 아픈 건 나랑 상관없어. 근데 왜 자꾸 내가 더 마음이 졸여지고 짜증이 나냔 말이야······.”

“······나 역시 네 놈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마음이 졸여지고 짜증이 난다.”

“! 너 안자고······!”

“그리고 눈에 담기면 간지럽지. 나는 바보라 이런 감정 잘 모르겠는데, 네 놈은 아는가?”

 

 

 

 

 

삐익─.

 

중간에 나왔던 축구 경기가 끝이 났는지 호루라기 소리가 잔잔한 바람에 실려 왔고 그 갑작스러움에 놀란 나카지마의 얼굴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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