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주파수가 맞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니, 본래부터 다자이 오사무와 나카지마 아츠시는 그들에게 꼭 맞는 톱니바퀴는 아니었다. 생긴 외모부터 시작해 성격, 그리고 타고 난 이능력까지. 끝과 끝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관계성을 가진 두 사람이었지만 나카지마는 오늘따라 다자이에게서 저와 다른 기척을 느꼈다.
“······.”
아무리 다르다고 해도 어느정도는 읽을 수 있는 표정부터 시작해 보이지 않는 기분은 물론,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는 대화까지도 나카지마는 날 때부터 익힌 익숙한 단어들로 하나 둘 세심하게 배열하여 최대한 상황에 알맞은 문장을 만들어 갔지만, 그것은 제 자신만의 착각인지 돌아오는 대답은커녕 제가 하는 말조차도 낯설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정말 같은 것을 보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 맞을까.
지금은 없지만 후에는 가져야 할 달짝한 간지러움을 가진 언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른 숨의 정적이 자꾸만 길어진다. 이대로 계속해서 숨결만 고르다간 많은 것을 놓쳐버릴 것 같은 기분.
“저···, 다자이 씨.”
시작도 전에 잘려나가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이야기하게 되어있는, 나카지마 자신이 그, 다자이 오사무에게 가진 마음을 잘라내지 않은 한 다루어야 할 주제에 한 달음에 달려 온 지금, 그 순간의 찰나를 멈추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오는 목소리는 단순한 호칭의 나열 뿐. 잠깐의 시간을 벌었지만 그것은 정말 시간벌기의 공백.
“산책이라도 하지 않으실래요?”
“이 밤에 말인가?”
“······.”
거절이 따라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반문에 나카지마의 입술이 꽉 깨물렸다.
“좋지. 산책이란 요란스럽지 않은 정도가 좋으니.”
다행히도 허락의 의미가 뒤따라왔다. 긴장한 만큼의 숨이 땅으로 가볍게 떨어졌고 나카지마는 금방 기운을 찾아 겉옷을 챙겨들었다. 갈까요? 첫 단추만큼의 무게는 아니었지만 나아가기 위함으로 쓰일 불씨였기에 꺼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꽃이 많이 폈군.”
“봄이 오긴 했나 봐요.”
많은 일들이 탐정사를 훑고 지나갔지만, 요즘은 풀어진 날씨 때문인지 대체로 사무실에 있었다. 요코하마가 평화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지만, 그로인해 바깥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이 없던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미루고 머물고 있는 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온화함을 담은 온기에 살랑거리며 봄이 왔음을 한 번 더 알려주는 파릇함들.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을 보다보니 어떠한 일, 그러니까 나카지마 아츠시의 마음속에서 피어난 다자이 오사무라는 꽃을 꺾어 본래의 주인에게 심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앉았다 갈까?”
그건 다자이도 감지한 내음일까. 가로등의 빛이 쏟아지는 나무 의자를 가리키며 준비를 도와주는 권유에 나카지마는 사양하지 않았다. 적당한 걸음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라.”
여느 때와 같이 여유롭게 말을 되짚는 다자이의 목소리에 나카지마는 겨우 박자를 찾은 심장고동을 놓쳤다. 쿵쿵, 아니 쿵쾅쿵쾅. 귓가에는 이미 고동소리만이 가득했고 제가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지도 아득하다.
“좋아해요.”
의식하려고 조금 크게 목소리를 내니 가장 부끄러운 말을 듣고 말았다.
“제가··· 다자이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화끈하게 달아오른 볼이 뜨거웠지만 그것에 중심을 옮겨 고백을 미룰 순 없었다. 거절을 당하면 당한대로, 허락을 받으면 받은 대로, 감히 짐작 할 수 없는 열기가 볼에 열꽃을 피울 것이고 볼만큼의 여린 살결들 역시 피어난 열꽃에 붉어질 것이 뻔했기에.
“좋아한다, 라······.”
음미하듯 중얼거려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여유에 취해있었고 속이 후련해야 할 나카지마는 오히려 속이 타들어갔다.
‘나도.’ 와 ‘미안.’ 의 둘 중 하나. 나카지마 스스로가 던진 미래는 여전히 뱅글뱅글, 확실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벌써 까맣게 타들어 간 속내를 다시 한 번 어지럽게 헤집는다.
“그, 그렇게 오래 생각하시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저···”
“······.”
“해야 할 일을 미리 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기다림이 너무나도 지독해 계획에 없던 말을 횡설수설 늘여놓았다. 자신도 의심스럽고 그렇지만 막을 순 없을 경박한 몸부림.
“나는 오래 생각하고 싶다네.”
“···네?”
“아츠시 군이 이 말을 꺼내기까지 많이 고민했겠지. 또 그 마음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도 해보았을 것이고.”
“펴, 평가까지는─···”
“그 평가로 도출된 건 지금의 고백일 테고.”
화르륵. 이미 마음을 태운 열이 다시 불길을 일어 이제는 몸까지 태우려고 드는 기분이었다. 발간 꽃씨들이 콕콕 나카지마의 몸 곳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래서 나도 자네만큼의 시간을 사용해 진지하게 임하려 했지만 자네의 “좋아해요.” 라는 말에 바로 결론이 내려졌다네.”
“······말해주세요.”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매정하게 뱉어진 끝이라는 온점에 상처를 받아 그 치유의 시간이 길어도 나는 감내할 수 있다고 나카지마는 스스로를 어르고 달랬다. 금방이라도 흐를 눈물이 다지는 각오를 일렁이게 하지만, 눈꺼풀을 닫아내는 것으로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렀다.
“나 역시, 자네를 마음에 두고 있어.”
“네?”
감았던 눈이 저도 모르게 뜨여진 것은 정말, 정말로 믿지 않았던 행복한 결말 때문. 그 탓에 마르지 못해 고여 있던 눈물이 볼에 자국을 남기며 떨어졌고 다자이는 부러 유쾌하게 이야기를 덧붙였다.
“어쩐지 오늘따라 자네가 나를 너무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런 중대한 이유 때문이었나~”
그러나 이미 그때부터 한 사람에 대해 사랑으로 채워진 남자였기에 연인으로 마주하게 될, 그리고 하게 된 얼굴이 더는 울지 않게 달래주는 손길은 여유가 아닌 상냥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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