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처음은 그와 함께였다.
나은 걸음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받은 것도, 성장을 위한 인정을 쟁취하려는 것도. 더 나아가서는, 스스로도 모르게 닫은 마음의 문 역시 그의 손을 잡고, 그가 만들어 준 발판을 믿고 열었다. 하지만 지금 내딛는 길은 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디딤돌. 가까워지는 거리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곧 맞닿은 이마가 뜨겁게 열을 토한다.
“다, 다자이 씨······.”
한 마디의 말에도 가득 품어지는 숨결마저도 부끄러운데 곧장 그의 입술로 닿는 것이 화끈, 달아오르게 해 나카지마는 전하고 싶은 말을 잇지 못한다. 한 사람에게는 어색하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어색하지 않는 공백. 아직 어리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소년의 망설임에 다자이는 소년이 삼킨 알갱이를 천천히 음미하듯 부드럽게 입가에 미소를 건다.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는가?”
공유하고 있는 시간이 즐거워 기다리는 이의 얼굴은 빙글빙글 좋은 얼굴이 된다. 탓에 살짝 접힌 눈매가 깊어졌다. 탓에 명백한 놀림이라고 생각했는지 부루퉁, 나카지마는 볼을 부풀리며 밉지 않게 흘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 사이로 빨려 들어가 그 사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착각이 일었기에 세모꼴로 올렸던 눈매와 함께 시선을 급히 아래로 피한다.
“그건 아니지만···”
익지 않은 감정의 자람은 뛰고 있는 심장을 더욱 가쁘게 만들었고, 그것은 상대에게 더욱 큰 재미를 안겨주었는지 더욱 짙게 올라가는 입매가 보인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기에 보고 있지는 않지만, 눈 역시 둥글게 접혀있을 것 같은 얼굴이 연상된다. 조금 분하다고 생각 할 때 출처를 알 수 없는 열이 홧홧하게 볼을, 귀를, 그리고 목덜미까지 지나쳐간다.
“겨우 이마를 맞댄 것뿐일세. 아직 이곳은 닿지도 않았어.”
아주 조그마한 자극에도 새로운 반응이 하나 둘 켜지는 모습이 꽤나 재미 져 계속하고 싶었지만, 후에 토라져선 멀리하는 어리광엔 당해내지 못할 것을 알기에 다자이는 열기에 감겨있는 나카지마에게서 서서히 떨어지는 것으로 참았다.
“그, 그치만─!”
말소리가 멀어지며 이마에서 느껴지던 체온도 멀어진다. 한숨 돌렸다고 방심하던 순간, 길게 뻗은 손가락이 입술을 가볍게 건드리고 지나간다. 다시 얼음.
“이래서는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겠는 걸?”
어깨를 으쓱이며 머리칼로 옮겨가는 손가락들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몸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네. 시간은 많거든. 어르는 목소리 역시 다정다감해 언제 굳었냐는 듯 이번엔 녹진히 풀어져버리는 줏대 없는 근육이 나카지마는 원망스러웠다. 손바닥 위에 있는 기분. 이래서는 도무지 제가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
‘저도 이제 성인이라구요!’
얼굴을 본 지는 햇수로 치지만 연애일로 치자면 100일을 앞둔 풋풋한 커플. 그래서였을까. 지난날과 다를 바 없는, 아니, 고작 한 발자국 정도 가까워진 듯한 애매한 관계에 나카지마 쪽에서 안달이 나버렸다. 그래서 무작정 저지른 투정. 그것에는 당황시키려는 의도가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 대상이 자신은 아니었다. 당연하게 다자이, 여유를 빼면 시체라고 생각 할 정도로 제 페이스를 잃지 않는 사람인, 다자이 오사무를 당황시켜 가벼운 뽀뽀라도 받아 낼 요령이었으나 소년이 간과한 것은 그가 전 마피아 간부였다는 사실. 물론 이것이 마피아 간부라는 것과는 접점이 많아보이지는 않지만, 부족한 스스로를 탓하기 보다는 억지를 부려 위안을 삼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니 더욱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크다.
“···시 군. 아츠시···. 아츠시 군.”
“네? 네! 아······.”
마주친 눈이 창피하다. 절로 숙여지는 고개.
“!”
또 다시 땅을 마주하고 있어야 하나, 싶어 다시금 밀려오는 실망감이 증폭된 복잡함으로 기운이 빠질 때, ‘촉’ 하는 가벼운 온기가 이마에 떨어졌다 사라진다. 무엇이 다녀갔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똑같은 온기가 이번엔 코끝에 걸렸다 사라지고 이내 젖살이 남아있는 보드라운 뺨에도 왔다간다.
“···다자이 씨······.”
이번에도 처음은 저쪽이다. 억울함보다는 미안함이 가득해 눈가가 잔뜩 시려온다.
“울리려고 한 건 아닌데···, 내 성급함이 또 자네의 약함을 건드려버렸군. 미안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히려 아츠시 군의 처음을 매번 가져간 내가 미안하지.”
“······.”
금방이라도 떨어져도 이상 할 것 없이 가득 고인 물방울이 몽글몽글 속눈썹에 걸린다.
“처음의 영광을 내게 주어서 항상 고맙네, 아츠시 군.”
엉엉, 복잡한 감정이 섞인 울음이 터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소년은 또 다시 성장했다. 환한 햇살과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잔뜩 올라온 물기를 말린다.
“저야 말로요. 제 처음을 함께 내딛어주어서 고마워요, 다자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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