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입장문 2019. 2. 20. 19:01

 

임무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원래라면 스코프에 담겨 뇌수가 터지고 심장이 관통 당했어야 할 타깃이 오히려 저를 손바닥 안에 밀어 넣고 여유를 부리고 있다. 어떻게든 사살을 하라 내려진 명령을 지키려 품고 있었던 단도는 이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군 지 오래. 살아서 돌아간다면 성과에 대한 보고를 해야 했기에 치명상 아니 작은 생채기라도 내려 반항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실낱같은 숨결을 꼭 쥐곤 놓지 못하고 있는, 생존 욕구를 자극하는 평온한 권유.

 

 

 

 

 

, 어떻게 할 것인가 소년?”

 

 

 

 

 

현재 스코프에 담긴 사람은 나카지마, 자신이었다. 세상의 이면부터 보고 자란, 살고자 하는 욕심이 누구보다 강한, 열여덟 소년이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조직의 규율에 따른 자결 혹은 거두어 주었던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어느 것을 선택하든 비참한 결말을 맞는 선택지 뿐. 하지만 그런 소년의 운명을 비웃기라도 하 듯 지금, 새 삶이라는 선택지를 내미는 중년의 남자가 소년의 앞에 있다.

 

 

 

 

 

 

 

새 삶

: 이미 있던 것이 아니라 처음 마련하거나 다시 생겨난 목숨 또는 생명

 

 

 

 

 

 

 

신분세탁은 물론 죽을 때 까지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누가 봐도 제안 한 쪽이 손해인 권유에 대한 조건은 자신을 모리 오가이라고 소개 한 중년의 남자가 제시했다. 지금 저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타깃. 이미 뒤집혀버린 판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여유 때문인지 그저 자신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하지만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는 추상적인 그런 내용을 제시하며 살 길을 제안하는 남자는 이해되지 않았다.

때문에 찜찜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앞으로 가지게 될 패 보다 비교 하지 못 할 정도로 좋았기에 소년의 대답은 당연하게도 긍정으로 기울었다. 끄덕. 욕심의 무게가 고개를 가볍게 위아래로 까딱이게 했고 그 간단한 행위로 얻게 된 새 삶. 결정을 하고 보니 어쩌면 이제껏 살았던 삶보다 더 탁할 수 있는 연장선이 보였고 나카지마는 저 멀리서 천천히 밀려오는 의심과 불편함에 흘낏 모리를 쳐다보았다.

 

 

 

 

 

그리 겁먹을 필요 없네. 자네는 그저 내 귀여운 앨리스와 친구가 되어 주면 된다네. 가끔 내 말동무도 해주고 말이지.”

“···앨리스요?”

어렵지 않을 걸세.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라 그 아이 역시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할 거야. ,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앨리스는 참 어여쁜 소녀라 정말로 내 눈 안으로 넣으려다 아파서 포기 하게 만든 아이라네.”

 

 

 

 

 

일방적으로 혼자 떠드는 모리의 말에 나카지마는 적당히 반응해주었다. 반복되는 감탄사와 한정적인 대답 그리고 어색하지만 기분을 맞춰주려 살짝 올린 입 꼬리까지. 모두 처음 해 보는 일이였지만 나카지마는 필사적이었다.

꽤 오랜 시간 올라가 내려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입술 끝이 한계에 달했는지 바르르, 경련이 올 쯤 모리가 처음 보았던 여유롭지만 압박감이 느껴지는 인상으로 나카지마를 내려다본다.

 

 

 

 

 

도착 했다네.”

 

 

 

 

 

눈 안에 들어 찬 높은 건물은 소년의 작은 몸을 더욱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기가 죽어버린 소년의 흔들리는 시선은 어느 한 곳에 제대로 두지 있지 못하고 그저 바닥과 앞서 걷는 모리의 등을 번갈아가며 따라 걷다 이내 자신도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몸 전체를 휘감은 위협감에 내부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지만 알 수 있는 사실은 제 타깃, 그러니까, 모리 오가이라는 남자는 보통 사람의 축에서 한참은 벗어나있다는 것. 소년은 제 손에 걸려있었던 목숨의 무게를 새삼 느끼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금이야 운이 좋아 거두어졌다고 해도 내쳐지는 건 한 순간. 여물지 못한 몸이라 계산은 정확하게 하지 못해도 처음보다는 미묘하게 바뀐 소년의 눈빛에 모리의 입가엔 호선이 그려졌다. 영특한 아이로군. 그럼 이제 충성심을 확인 해 볼까. 미리 주변을 비워두라는 지시를 해두었던 터라 도달한 최상층에는 두 사람 뿐 이였다.

 

 

 

 

 

내 아이를 보여주기 전에 자네가 내게 어느 정도의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싶은데, 괜찮은가 소년?”

 

 

 

 

 

나카지마는 올 것이 왔다 생각하곤 눈을 한 번 질끈 감는다. 이번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받아 낸 긍정의 대답. 느리게 내려갔다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고개에 모리는 여전한 미소를 머금고 안절부절 다시 겁에 휩싸인 소년에게 다가갔다.

 

 

 

 

 

나카지마 아츠시··· 라고 했던가?”

 

 

 

 

 

고작 이름을 묻는 아주 간단한 질문에도 숨이 턱턱 걸려 막혀 왔다. 끝자락에는 굳게 닫혀있는 문만이 있는 넓고 긴 복도. 소년을 도와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츠시 군, 내게 보여 줄 충성은?”

 

 

 

 

 

느긋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새로운 주인에 소년은 품이 딱 맞아 떨어진 가죽 장갑이 스스로의 넥타이를 풀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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