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입장문 2019. 2. 23. 01:07

 

 

 

 

 

 

 

 

 

 

가문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황궁에서 주최하는 가면무도회를 참석하길 바란다는 말은 모두 저의 신변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함정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제가 마음에 깊이 품어두고 있던 이를 통해 전하는 것은 어떠한 겁박에도 꿋꿋하게 버텨내려는 의지를 뒤흔들기 위함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을 지키느냐의 선택. 카가미는 망설임 없이 마차에 몸을 실었고 그 뒤로는 어린 시절부터 곁에 있어주었던, 그의 유일한 약점으로 칭해지는 이 하나만이 그를 따랐다.

 

 

 

 

 

“···언제나처럼 참석을 피하셔도 되었을 텐데요.”

 

 

 

 

 

순순히 뜻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익지 않아서인지 늘 고요하게 잔잔한 파동만을 가지고 있던 목소리가 약간은 격양되어있었다. 출렁. 큰 물결이 타고 있는 불길에 닿았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게끔 화려하게 핀 불꽃이라 언제나처럼 돌아오던 얌전한 따사로움은 없었다. 아마도 지난 밤 서재에서 어른들과 나눈 이야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는 각오라는 것을 다지고 온 모양. 한층 성숙해진 그것을 섣불리 건드렸다간 불필요한 동요가 일지 몰라 쿠로코는 뱉고 싶어 목 언저리를 간지럽히는 제 할 말을 꾹꾹 삼키고 상황에 맞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이끈다.

 

 

 

 

 

선택을 하신 것에 대한 잔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할 예정이니 궁으로 들어가는 동안 주의해야 할 궁중예절에 대해 복습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쿠로코.”

.”

 

 

 

 

 

지키려고 든 이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하고 있던 연기로는 이미 베여버린 말버릇까지는 어떻게 순화시킬 수 없어 평소와 같이 허리를 잘라내는 화법이 나왔다. 꽤나 갑작스러운 난입에 놀랄 법도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차분히 대꾸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중의 모습. 카가미는 저와 마주친 쿠로코의 눈을 오래 볼 자신이 없어 미리 준비했던 가면 하나를 품에서 꺼냈다.

 

 

 

 

 

너도 쓰는 게 좋을 거야.”

 

 

 

 

 

고용인까지 가면을 써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다. 애초에 궁 안으로는 신분이라는 자격이 주어지는 이들만 들어 갈 수 있게 되어있는 공간으로, 주인인 카가미 타이가가 수하인 쿠로코 테츠야에게 전해주는 가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쿠로코는 그 의도를 파악하기에 앞서 제게 내밀어진 가면을 어설프게 받았다. 그리고 광택으로 반질한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하염없이 창 너머의 세상을 담는 주인의 옆모습을 훔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카가미 군은. 오늘따라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차분함이 오히려 저를 불안하게 만들어 답지 않게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많이 위험하겠지.”

 

 

 

 

 

도착하기 직전에 퍼진 그토록 듣고 싶던 속마음은 따뜻한 숨결과는 반대로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불길함이 한 가득 담겨있는 한숨. 쿠로코는 제 손에 쥐어진 가면을 꼭 쥐었다.

 

 

 

 

 

그렇지만 너는 안전할거야. 어떤 곳이라도 좋으니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잘 숨어있어. , 너 정도 체격이나 기척이면 어디에 숨어도 쉽게 찾지 못하겠지.”

카가,”

찾으러 갈게. .”

 

 

 

 

 

늘 그랬던 일상처럼 기분 나쁘다는 얼굴과 함께 당신이 큰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면 그가 내린 위험한 결론을 번복하게 만들어 멀어진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 이번엔 쿠로코 쪽에서 허리를 잘라내는 화법을 따라했지만, 처음이라는 익지 않은 시도는 금방 효력을 잃고 그의 말에 잠식된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그때까지 나 말고 아무에게 들키지 말고 잘 숨어있어.”

 

 

 

 

 

이마를 지나 눈두덩, 양 뺨 그리고 입술에 가볍게 떨어지는 그만의 온기가 그가 스스로 연 마차의 문을 통해 밤하늘로 멀리 멀리 날아간다.

 

 

 

 

 

이따가 보자.”

 

 

 

 

 

간직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그를 다시 한 번 붙들고 싶었지만 마지막 표정을 가면으로 가린 채 한 걸음 두 걸음 떠나간다. 화려함이 가득하지만 그 안은 추악하기 그지없는 소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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