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흑 전력 90분 제 110회, 치과
써두었지만 이제서야 올리는 대지각 글
아침부터 아카시의 기분은 저조했다. 원인은 일정한 주기마다 아려오는 입 안의 통증.
아무리 아파도 아카시는 엄살이 심하다고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픔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끈덕지게 날뛰는 통각세포들의 기척은 아카시의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그의 검은 아우라를 일찌감치 눈치 챈 농구부원들은 그의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를 꺼렸다.
이대로는 연습도 연습이지만 딱딱하게 경직된 분위기에 유연함이 떨어져 부상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까 싶어 속닥속닥 의견을 주고받은 결과, 그나마 가까운 사이로 지목된 미부치가 등 떠밀렸다. 반 강제적인 결과에 미부치는 잔뜩 싫은 티를 내었지만 ‘한 번 만’ 이라고 사정을 하는 부원들의 모습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어 그에게 다가갔다.
“세이쨩, 입 안이 아파?”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리고 심호흡과 함께 운을 떼니 잔뜩 날이 선 얼굴로 되묻는데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간다.
“손이 계속 볼을 감싸고 있길래. 아니면 볼을 다친 거야?”
아픔에 자각하지 못하고 한 행동을 정확하게 꿰뚫은 미부치에 아카시는 아···, 라는 감탄사와 함께 손을 내렸다.
“이가 새로 나는 것 같아.”
“이가?”
“아직 나지 못한 어금니가 말이지.”
“잠깐, 세이쨩. 지금 어금니가 난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미부치는 아차차, 시원하게 쏟은 말을 수습하려 아카시의 얼굴을 살피는데 아카시 역시 제가 말한 이유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는지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
아카시는 자신이 이야기 했어도 아이러니하긴 했다. 그러게, 지금 나이가 몇 인데. 이가 모두 나지 않았을 리가. 성장을 하고 있다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남들보다 한참 뒤처지는 성장은 이해도 납득도 되지 않는 변화.
“그거 단순한─”
“충치일 리가. 이 내가, 아카시 세이쥬로가, 충치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그렇겠지? 하야마는 활짝 연 포문과는 다르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저 구석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답은 하나네.”
“그게 무엇이지?”
“사랑니.”
사랑니라······. 확실히 사랑이 시작되는 나이에 다가섰다. 열일곱. 첫 사랑이 시작되어 청춘의 꽃이 만개하는 나이. 아카시는 제 병명의 답이 확정지어지기 무섭게 체육관을 박차고 나왔다. 뒤에서 어디로 가냐는 말들이 섞여 왔지만 그것을 들어 줄 여유는 없었다.
* * *
“갑작스럽게 무슨 일입니까?”
“아, 오랜만이야.”
“인사를 받으려고 물었던 것이 아닙니다.”
학교를 나서면서 미리 연락을 넣었다. 자신의 진료 예약을 잡아달라고. 그 탓인지 따분한 오전의 티타임을 가지지 못한 진료의의 얼굴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 증거로 잔에 가득 담긴 채 김만 폴폴 내고 있는 차가 에어컨의 바람으로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사랑니가 났어.”
“벌써 그런 나이군요.”
본격적인 상담에 앞서 아카시는 차가 더 식기 전에 들라 권했다. 호록. 그 신호를 거절하지 않고 가볍게 한 모금 머금는 의사. 아직까지 따뜻함이 남아 가득 맴도는 향이 그의 예민함을 누그러뜨렸다.
쿠로코 테츠야.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보다 한참 작던 유년기 시절. 유치를 뽑기 위해 만났던 인연은 지금 사랑니를 발치하여야하는 시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했다. 꾀병부터 시작해 머리가 컸을 땐 어른인 쿠로코도 모를 정도로 치밀한 방법까지. 그 덕분에 쿠로코는 아카시를 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아카시는 그런 제 위치가 만족스러웠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거야? 속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속설이라고 해도 전혀 근거 없는 속설은 아닙니다. 실제로 아카시 군 정도의 나이라면 좋아하는 이를 가슴에 품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그래?”
예고 없이 찾아 온 사랑니와 그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사랑 이야기는 아카시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상대가 쿠로코라면 더더욱.
“테츠야도 이런 적이 있었어?”
“글쎄요. 너무 지난날이라 자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남자에게 첫사랑은 각별하다고 하던데.”
“그러는 아카시 군의 첫사랑은 어떤데요?”
턱을 괴고 여유롭게 받아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른의 모습. 아무리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고 해도 성년이 되지 못한 소년이 그를 넘어서지 못하고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대로 막힌 말문은 아카시를 난감하게 만들었고 자신만을 올곧게 담고 있는 물색의 옅은 눈망울이 안에서 새로 자라나는 처음의 감각을 더욱 아릿하게 만든다.
“이게 첫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아프네.”
아직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무지한 상태지만, 직감은 알았다. 첫 사랑. 그것이 지금 제게 찾아 왔다는 것을.
“원래 첫사랑의 통증은 열병과도 같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어린아이를 대하듯 생긋 웃는 모습의 잔상이 화르륵 열병을 일게 해 가슴께부터 화끈거림이 거품처럼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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