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입장문 2019. 6. 30. 11:29

청흑 전력 60분 115회, 글씨체


 

 

 

 

 

 

 

 

 

 

 

글씨체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소년, 쿠로코 테츠야가 남긴 쪽지에 아오미네는 언젠간 들었던 흘러들은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니 소년의 무심한 얼굴과 그의 묵직한 애정이 떠올라 슬핏 웃음이 샌다.

 

표정이 거의 없는 민낯으로 묵묵히 챙겨주는 말을 하는 순간, 옅은 홍조를 띄운 주제 눈망울만은 올곧게 저를 담고 사랑을 속삭여주는 순간, 이따금 손을 잡으면 손깍지로 엮어오는 당돌한 순간 등등 함께 공유한 많은 순간들.

 

그것들 중 단연 최고라고 꼽을 수 있는 순간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들이었다. 어제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달뜬 분위기에 들떠 옅은 기척을 마음껏 내보이며 엉겨오는 소년은 지금 생각해도 아랫배에 빳빳하게 힘이 실리게 한다.

 

 

 

 

 

“테츠 병에 단단히도 걸렸네.”

 

 

 

 

 

보고픔은 아오미네를 당장이라도 소년이 있을 학교에 찾아가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리움은 소년을 품 안에 넣곤 진하고 농밀하게 탐하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철부지가 가진 자제력보다 못한 충동성이기에 아오미네는 그가 잠들었던 자리에 머문 잔향으로 허기를 달랬다.

 

 

 

 

 

“더 보고 싶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싶었던 행위는 하나도 도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을 붙게 기름을 들이 부어대는 덕에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고인 소년의 냄새를 잠시나마 떨치려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니 너무 원해서일까. 소년의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잠이 물러가지 못한 눈을 부비며 까치집 진 머리를 누르곤 조심스럽게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를 확인하는 뒷모습. 그 인영은 남아있는 재료들을 보고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잠시 미동이 없었다가 움직인다.

 

그가 고민하다 꺼낸 재료는 비닐에 싸둔 약간의 야채들과 달걀 두 개. 볶음밥을 할 것임을 아오미네는 금방 알아챘고 그 예상은 딱 맞았는지 소년은 야채들을 도마에 통통 잘게 썰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처음부터 불을 세게 켜두어서인지 금방 열이 올라 지글지글 미리 두른 기름이 동그란 모양으로 끓는다. 그 소리에 소년은 썰은 야채를 넣고 밥을 넣고 다시 볶는다. 그리 어려운 요리가 아니었기에 뚝딱 만들어진 아침.

 

 

 

 

 

“아오미네 군은 늘 많이 먹으니까요.”

 

 

 

 

 

수납장에서 그릇 하나를 꺼내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여전하게 잠겨있다. 아오미네는 그 작은 순간까지도 몽글거려 이마를 짚었다. 그러는 사이 소년은 제가 먹을 양을 적게 퍼 담았고 남은 양은 모두 자신의 것으로 남겨 두는 것인지 그대로 덮개로 덮어두었다.

 

 

 

 

 

“깨웠으면 같이 먹었을 텐데.”

 

 

 

 

 

식탁에 홀로 앉아 꼭꼭 밥알을 씹고 오물오물 수저질을 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한 안타까움에 탄식과도 같은 말을 뱉으며 아오미네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 턱을 괴었다.

 

 

 

 

 

“오늘은 부활동 때문에 조금 늦는 날이니까······.”

 

 

 

 

 

먹는 도중에도 오로지 저를 생각하는 소년은 쉴 틈 없이 사랑스러웠다. 꾹꾹 메모지에 써내려가는 글들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정갈하게 열을 이루며 저에게 전해야 할 말을 전했다. 간단하지만 보통의 섬세함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라 그 일 때문에 늦진 않았을까 염려되었지만, 내용을 읽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아침 거르지 말고 꼭 드세요, 아오미네 군. 일부러 데울 수 있는 음식들로만 했으니까 꼭 먹어요. 그리고 빨래 돌려두고 나왔는데 바로바로 널지 않으면 구겨지니 너는 건 너가 해야 합니다.]

 

 

 

흘낏 담았던 글귀는 반듯하지만 둥글둥글 그와 같은 보드라운 내용이 담겨있을까 설렘으로 섣부르게 미소를 지었는데, 그것은 잠깐의 행복한 기대. 부풀렸던 감정이 무색하게 담긴 내용은 저에게 전하는 잔소리였다.

 

 

 

 

 

“하여간, 걱정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라도 아오미네는 알고 있었다. 소년이 얼마나 자신을 생각하고 걱정하는지에 대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시지 않은 잠기운을 하품으로 입을 쩌억 벌리던 아오미네는 무심하게 뒷목을 긁적거리던 손으로 포스트잇을 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으로 그의 마음을 훑은 후, 한 상자를 꺼내 그곳에 포스트잇을 담았다.

 

이미 상자 안은 소년의 글씨체가 담긴 같은 포스트잇으로 가득 차있었지만 아오미네는 아랑곳 하지 않고 꼭 눌러 새로운 그의 온기를 담았다. 그리고 소년의 당부대로 몸을 움직였다.

 

 

 

 

 

“으아아─.”

 

 

 

 

 

빨래까지 완벽하게 널은 한가한 오전. 아오미네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전, 느긋하기만 한 여유의 소리를 들으며 소년이 남겼던 포스트잇을 꺼내 저 역시도 답의 글을 꾹꾹 눌러 쓴다.

 

 

 

 

 

 

 

+)

 

“다녀왔습니다.”

 

 

 

 

 

쿠로코가 집으로 돌아왔을 땐, 아오미네는 외출을 하였는지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아침에 제가 남겼던 쪽지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쪽지가 있었다.

 

 

 

[아침 잘 먹었고 빨래도 잘 널어놨어. 오늘 아침 같이 못 먹었으니까 저녁은 같이 먹자.]

 

 

 

그의 성격만큼이나 시원스럽고 크게 쓰인 말. 그리고 옆에는 쓰다가 말이 꼬여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쪽지들이 서너 개 정도 구겨진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절로 연상되는 당시의 상황에 쿠로코는 기분 좋은 미소를 걸고 그의 번호가 저장되어있는 단축번호를 길게 꼭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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