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입장문 2019. 7. 7. 22:22

재업 글


 

 

 

 

 

거리를 좁힌다는 것은, 관계의 진전과 더불어 그어두었던 선을 넘는다는 의미가 부여되는 일이었다. 쉽게 내주지 않는 곁과 가까워지기 위해 나아가는 걸음은 설렘으로 가득했고 매 순간이 두근거렸다. 그랬기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냥 좋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다가갈수록 알게 되는 겉치장에 숨겨져 있던 순수한 날 것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실망도 크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단정 짓고 있던 부분이 명확한 사실로 드러나 정면으로 부딪힌 순간, 이로 말할 수 없는 믿음의 벽 하나가 무너져 내려 저의 발목을 잡고 거대한 파도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

 

 

 

 

 

얼굴을 보지 못한 지 삼 일하고도 반나절. 그만큼 비어져있던 자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벼운 먼지가 앉아있었다. 나카지마는 그것들을 닦아내었다. 그러면서 외근이라는 그의 소식을 곱씹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아직 그, 다자이 오사무와의 연애진도는 초기에 가까웠다. 그 말은 달큰한 애정을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내를 한계에 달하게 만들었다. 요동치는 마음에서 보고픔이 일었고 곧 그 감정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카지마를 움직여 그의 집 앞으로 가게 만들었고 만나게 되었다.

 

 

 

 

 

“저는, 그저···, 다자이 씨가 걱정 되어서······.”

 

 

 

 

 

그가 그렇게 숨기고 싶어 했던 과거의 모습과.

 

 

 

 

 

 

 

그대와의 거리

;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그 어딘가

 

 

 

 

 

 

 

“···아츠시 군.”

 

 

 

 

 

시체 더미에서 굴렀어도 이렇게 지독한 피 냄새가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온기를 타고 코를 찡그리게 만드는 비릿함은 헛구역질을 나게 만들었고 뒷걸음까지 치게 한다.

 

 

 

 

 

“걱정을 해주었다니. 역시 아츠시 군은 상냥하네.”

“다자이 씨······.”

 

 

 

 

 

칠흑 같은 어둠을 뒤집어 쓴 터라 형체만 보이는 연인의 모습. 어떠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목소리만으로는 추측되지 않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여유와 다정함이라 꿈이라도 꾸는 듯한 비현실감이 자꾸만 눈에 들이차는 장면을 의심하게 한다.

 

 

 

 

 

“···이, 일단 씻고 나서······!”

“아츠시 군.”

 

 

 

 

 

무엇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겨우 벌렸던 거리가 가까워졌다. 다시 거리를 줄 틈도 없이 역한 숨결이 긴장으로 뻣뻣한 숨결에 섞이며 곧 연약한 피부에까지도 음습하게 스며들어간다.

 

쿵쿵

 

심장박동만이 고요한 적막을 깨는 지금, 나카지마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제 연인이 제가 알고 있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순응해주는 것 외엔.

 

 

 

 

 

“그리웠어. 이 냄새, 이 온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진 집합체가.”

 

 

 

 

 

말투는 여전히 다정했다. 머리칼부터 시작해 손가락 마디를 엮는 손길 역시 따뜻해 하마터면 제 기억 속에 그려지는 상냥하기만 하던 연인으로 돌아 왔다는 착각에 이를 뻔했다.

 

 

 

 

 

“하, 하지 마!”

 

 

 

 

 

현혹되지 않으려 발버둥 쳤지만, 아직은 미숙한 소년. 완숙한 남자의 올가미를 벗어나기엔 역부족의 힘과 요령이라 제 풀에 지치기만 한다. 이미 포기를 해버렸던 탓에 감각은 둔해졌고, 맞닿은 몸에 새하얀 셔츠는 물론 체온까지도 이미 그와 같은 검붉은 핏물이 들었다.

 

 

 

 

 

“아츠시!”

 

 

 

 

 

벗어 날 수 없다고, 거부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포기하려는 순간 낯익은 목소리의 다급함이 제 어깨를 끌었고 덕분에 얽혔던 거리가 벌어지며 까맣던 시야가 눈부시게 빛이 난다.

 

 

 

 

 

“쿠니···키다······씨.”

“가까이 하지 말라고 그리 얼렀건만!”

 

 

 

 

 

사나운 눈매를 가려주지 못하는 안경을 고쳐 쓰며 저를 들쳐 매는 손길이 약간 떨린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 예상치 못한 빛에 시야가 좁아 감히 예상하지는 못하겠지만, 소년, 나카지마는 알고 있다.

 

그토록 동경하던 빛으로 되돌아오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것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어둠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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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장문 2019. 6. 30. 11:29

청흑 전력 60분 115회, 글씨체


 

 

 

 

 

 

 

 

 

 

 

글씨체는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소년, 쿠로코 테츠야가 남긴 쪽지에 아오미네는 언젠간 들었던 흘러들은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하니 소년의 무심한 얼굴과 그의 묵직한 애정이 떠올라 슬핏 웃음이 샌다.

 

표정이 거의 없는 민낯으로 묵묵히 챙겨주는 말을 하는 순간, 옅은 홍조를 띄운 주제 눈망울만은 올곧게 저를 담고 사랑을 속삭여주는 순간, 이따금 손을 잡으면 손깍지로 엮어오는 당돌한 순간 등등 함께 공유한 많은 순간들.

 

그것들 중 단연 최고라고 꼽을 수 있는 순간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들이었다. 어제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달뜬 분위기에 들떠 옅은 기척을 마음껏 내보이며 엉겨오는 소년은 지금 생각해도 아랫배에 빳빳하게 힘이 실리게 한다.

 

 

 

 

 

“테츠 병에 단단히도 걸렸네.”

 

 

 

 

 

보고픔은 아오미네를 당장이라도 소년이 있을 학교에 찾아가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리움은 소년을 품 안에 넣곤 진하고 농밀하게 탐하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철부지가 가진 자제력보다 못한 충동성이기에 아오미네는 그가 잠들었던 자리에 머문 잔향으로 허기를 달랬다.

 

 

 

 

 

“더 보고 싶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싶었던 행위는 하나도 도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을 붙게 기름을 들이 부어대는 덕에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고인 소년의 냄새를 잠시나마 떨치려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니 너무 원해서일까. 소년의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잠이 물러가지 못한 눈을 부비며 까치집 진 머리를 누르곤 조심스럽게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를 확인하는 뒷모습. 그 인영은 남아있는 재료들을 보고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잠시 미동이 없었다가 움직인다.

 

그가 고민하다 꺼낸 재료는 비닐에 싸둔 약간의 야채들과 달걀 두 개. 볶음밥을 할 것임을 아오미네는 금방 알아챘고 그 예상은 딱 맞았는지 소년은 야채들을 도마에 통통 잘게 썰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처음부터 불을 세게 켜두어서인지 금방 열이 올라 지글지글 미리 두른 기름이 동그란 모양으로 끓는다. 그 소리에 소년은 썰은 야채를 넣고 밥을 넣고 다시 볶는다. 그리 어려운 요리가 아니었기에 뚝딱 만들어진 아침.

 

 

 

 

 

“아오미네 군은 늘 많이 먹으니까요.”

 

 

 

 

 

수납장에서 그릇 하나를 꺼내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여전하게 잠겨있다. 아오미네는 그 작은 순간까지도 몽글거려 이마를 짚었다. 그러는 사이 소년은 제가 먹을 양을 적게 퍼 담았고 남은 양은 모두 자신의 것으로 남겨 두는 것인지 그대로 덮개로 덮어두었다.

 

 

 

 

 

“깨웠으면 같이 먹었을 텐데.”

 

 

 

 

 

식탁에 홀로 앉아 꼭꼭 밥알을 씹고 오물오물 수저질을 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한 안타까움에 탄식과도 같은 말을 뱉으며 아오미네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 턱을 괴었다.

 

 

 

 

 

“오늘은 부활동 때문에 조금 늦는 날이니까······.”

 

 

 

 

 

먹는 도중에도 오로지 저를 생각하는 소년은 쉴 틈 없이 사랑스러웠다. 꾹꾹 메모지에 써내려가는 글들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정갈하게 열을 이루며 저에게 전해야 할 말을 전했다. 간단하지만 보통의 섬세함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라 그 일 때문에 늦진 않았을까 염려되었지만, 내용을 읽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아침 거르지 말고 꼭 드세요, 아오미네 군. 일부러 데울 수 있는 음식들로만 했으니까 꼭 먹어요. 그리고 빨래 돌려두고 나왔는데 바로바로 널지 않으면 구겨지니 너는 건 너가 해야 합니다.]

 

 

 

흘낏 담았던 글귀는 반듯하지만 둥글둥글 그와 같은 보드라운 내용이 담겨있을까 설렘으로 섣부르게 미소를 지었는데, 그것은 잠깐의 행복한 기대. 부풀렸던 감정이 무색하게 담긴 내용은 저에게 전하는 잔소리였다.

 

 

 

 

 

“하여간, 걱정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라도 아오미네는 알고 있었다. 소년이 얼마나 자신을 생각하고 걱정하는지에 대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시지 않은 잠기운을 하품으로 입을 쩌억 벌리던 아오미네는 무심하게 뒷목을 긁적거리던 손으로 포스트잇을 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으로 그의 마음을 훑은 후, 한 상자를 꺼내 그곳에 포스트잇을 담았다.

 

이미 상자 안은 소년의 글씨체가 담긴 같은 포스트잇으로 가득 차있었지만 아오미네는 아랑곳 하지 않고 꼭 눌러 새로운 그의 온기를 담았다. 그리고 소년의 당부대로 몸을 움직였다.

 

 

 

 

 

“으아아─.”

 

 

 

 

 

빨래까지 완벽하게 널은 한가한 오전. 아오미네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전, 느긋하기만 한 여유의 소리를 들으며 소년이 남겼던 포스트잇을 꺼내 저 역시도 답의 글을 꾹꾹 눌러 쓴다.

 

 

 

 

 

 

 

+)

 

“다녀왔습니다.”

 

 

 

 

 

쿠로코가 집으로 돌아왔을 땐, 아오미네는 외출을 하였는지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아침에 제가 남겼던 쪽지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쪽지가 있었다.

 

 

 

[아침 잘 먹었고 빨래도 잘 널어놨어. 오늘 아침 같이 못 먹었으니까 저녁은 같이 먹자.]

 

 

 

그의 성격만큼이나 시원스럽고 크게 쓰인 말. 그리고 옆에는 쓰다가 말이 꼬여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쪽지들이 서너 개 정도 구겨진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절로 연상되는 당시의 상황에 쿠로코는 기분 좋은 미소를 걸고 그의 번호가 저장되어있는 단축번호를 길게 꼭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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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장문 2019. 6. 24. 23:45

적흑 전력 90분 제 110회, 치과

써두었지만 이제서야 올리는 대지각 글


 

 

 

 

 

 

 

 

 

 

 

아침부터 아카시의 기분은 저조했다. 원인은 일정한 주기마다 아려오는 입 안의 통증.

 

아무리 아파도 아카시는 엄살이 심하다고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픔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끈덕지게 날뛰는 통각세포들의 기척은 아카시의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그의 검은 아우라를 일찌감치 눈치 챈 농구부원들은 그의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를 꺼렸다.

 

이대로는 연습도 연습이지만 딱딱하게 경직된 분위기에 유연함이 떨어져 부상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까 싶어 속닥속닥 의견을 주고받은 결과, 그나마 가까운 사이로 지목된 미부치가 등 떠밀렸다. 반 강제적인 결과에 미부치는 잔뜩 싫은 티를 내었지만 ‘한 번 만’ 이라고 사정을 하는 부원들의 모습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어 그에게 다가갔다.

 

 

 

 

 

“세이쨩, 입 안이 아파?”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리고 심호흡과 함께 운을 떼니 잔뜩 날이 선 얼굴로 되묻는데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간다.

 

 

 

 

 

“손이 계속 볼을 감싸고 있길래. 아니면 볼을 다친 거야?”

 

 

 

 

 

아픔에 자각하지 못하고 한 행동을 정확하게 꿰뚫은 미부치에 아카시는 아···, 라는 감탄사와 함께 손을 내렸다.

 

 

 

 

 

“이가 새로 나는 것 같아.”

“이가?”

“아직 나지 못한 어금니가 말이지.”

“잠깐, 세이쨩. 지금 어금니가 난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미부치는 아차차, 시원하게 쏟은 말을 수습하려 아카시의 얼굴을 살피는데 아카시 역시 제가 말한 이유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는지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

 

 

 

 

 

아카시는 자신이 이야기 했어도 아이러니하긴 했다. 그러게, 지금 나이가 몇 인데. 이가 모두 나지 않았을 리가. 성장을 하고 있다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남들보다 한참 뒤처지는 성장은 이해도 납득도 되지 않는 변화.

 

 

 

 

 

“그거 단순한─”

“충치일 리가. 이 내가, 아카시 세이쥬로가, 충치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그렇겠지? 하야마는 활짝 연 포문과는 다르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저 구석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답은 하나네.”

“그게 무엇이지?”

“사랑니.”

 

 

 

 

 

사랑니라······. 확실히 사랑이 시작되는 나이에 다가섰다. 열일곱. 첫 사랑이 시작되어 청춘의 꽃이 만개하는 나이. 아카시는 제 병명의 답이 확정지어지기 무섭게 체육관을 박차고 나왔다. 뒤에서 어디로 가냐는 말들이 섞여 왔지만 그것을 들어 줄 여유는 없었다.

 

 

 

 

 

 

 

* * *

 

 

 

 

 

 

 

“갑작스럽게 무슨 일입니까?”

“아, 오랜만이야.”

“인사를 받으려고 물었던 것이 아닙니다.”

 

 

 

 

 

학교를 나서면서 미리 연락을 넣었다. 자신의 진료 예약을 잡아달라고. 그 탓인지 따분한 오전의 티타임을 가지지 못한 진료의의 얼굴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 증거로 잔에 가득 담긴 채 김만 폴폴 내고 있는 차가 에어컨의 바람으로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사랑니가 났어.”

“벌써 그런 나이군요.”

 

 

 

 

 

본격적인 상담에 앞서 아카시는 차가 더 식기 전에 들라 권했다. 호록. 그 신호를 거절하지 않고 가볍게 한 모금 머금는 의사. 아직까지 따뜻함이 남아 가득 맴도는 향이 그의 예민함을 누그러뜨렸다.

 

쿠로코 테츠야.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보다 한참 작던 유년기 시절. 유치를 뽑기 위해 만났던 인연은 지금 사랑니를 발치하여야하는 시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했다. 꾀병부터 시작해 머리가 컸을 땐 어른인 쿠로코도 모를 정도로 치밀한 방법까지. 그 덕분에 쿠로코는 아카시를 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아카시는 그런 제 위치가 만족스러웠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거야? 속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속설이라고 해도 전혀 근거 없는 속설은 아닙니다. 실제로 아카시 군 정도의 나이라면 좋아하는 이를 가슴에 품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그래?”

 

 

 

 

 

예고 없이 찾아 온 사랑니와 그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사랑 이야기는 아카시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상대가 쿠로코라면 더더욱.

 

 

 

 

 

“테츠야도 이런 적이 있었어?”

“글쎄요. 너무 지난날이라 자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남자에게 첫사랑은 각별하다고 하던데.”

“그러는 아카시 군의 첫사랑은 어떤데요?”

 

 

 

 

 

턱을 괴고 여유롭게 받아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른의 모습. 아무리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고 해도 성년이 되지 못한 소년이 그를 넘어서지 못하고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대로 막힌 말문은 아카시를 난감하게 만들었고 자신만을 올곧게 담고 있는 물색의 옅은 눈망울이 안에서 새로 자라나는 처음의 감각을 더욱 아릿하게 만든다.

 

 

 

 

 

“이게 첫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아프네.”

 

 

 

 

 

아직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무지한 상태지만, 직감은 알았다. 첫 사랑. 그것이 지금 제게 찾아 왔다는 것을.

 

 

 

 

 

“원래 첫사랑의 통증은 열병과도 같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어린아이를 대하듯 생긋 웃는 모습의 잔상이 화르륵 열병을 일게 해 가슴께부터 화끈거림이 거품처럼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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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장문 2019. 6. 9. 17:47

딱 1년간의 만남은 그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미련을 남게 만들어 매일 밤 그와의 추억이 담긴 메시지부터 시작해 사진을 훑게 만들었다. 이따금 손가락이 기억하는 열 한자리의 번호를 찍곤 통화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을 하게 만든 남자는 제게 잘 해주는 것은 없었지만, 보기만 해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남자였다고 나카지마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너무나도 불쌍했기에.

 

 

 

 

 

“아츠시 군,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별을 고하는 순간,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만나는 시간마다 소요되는 계산은 제 카드가 메꾸었던 일부터 시작해 그의 욕구가 차오르는 날이면 다음날이 출근이라도 침대에서 얌전히 굴어야 하는 모습까지.

 

 

 

 

 

“오늘도 예뻤어.”

 

 

 

 

 

한참을 제 멋대로 움직였던 남자가 애정 행위를 멎고 나른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신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담배의 매캐함을 싫어하는 저였지만 그것을 배려는커녕 모르고 있던 남자는 뻐끔뻐끔, 연기를 뿜었다. 그럼에도 인상이 찌푸려지지 않은 것은 거기에 섞어주는 다정한 말과 담배를 들지 않는 반대쪽 손을 이용하여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려주는 일정한 다정함 때문. 애정이라곤 껍데기뿐인 감촉이라도 좋았던 나카지마는 찝찝하게 남아있는 감각을 애써 무시하고 알싸한 냄새가 가득 고인 그의 가슴팍에서 잠들었다.

 

바로 어제까지도 그랬다. 아니, 몇 시간 전만 해도. 여운은 사라졌지만 흔적은 여전하게 남아있었고 그와 짝꿍인 통증이 허리에서 찌릿, 대신 운다.

 

 

 

 

 

“마도 씨.”

“내게 너는 너무나도 과분한 사람이야. 늘 마음고생을 시키는데······. 내게 언제까지 이렇게 폐만 끼치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어.”

 

 

 

 

 

내뱉는 목소리는 물론, 조합한 문장에 온통 꿀을 발라두었는지 달콤하게 꽂힌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들으면 모두 저를 위한다는 이야기로 포장된 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방적인 통보임에도 나카지마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못난 사랑을 찾아 애써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려 했다. 그래서 “왜요?” 라는 말로 따지지도 못하고 그저 터지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으며 알겠다고, 그 동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그가 떠나가는 모습만 담았다.

 

일렁이는 시야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기분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나카지마는 부러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낯선 이들의 어깨와 스치고 내키는 대로 골목을 꺾다보니 어느덧 도착한 곳은 잘 알지 못하는 술집 앞.

 

 

 

 

 

“안 들어가냐.”

“아······.”

 

 

 

 

 

어디서부터 잘못 든 길인지 주변 모두가 술집으로 가득한 거리는 겁을 먹게 만들었다. 위축된 몸이 험한 일을 당하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시선을 아래로 두고 차분하게 한 걸음 옮기려니 미처 알아채지 못한 기척과 부딪혔다.

 

 

 

 

 

“혼자?”

“···네.”

 

 

 

 

 

당황스러움에 잠시 멍하니 부딪힌 상대를 보았고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와 마주치자마자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나온 상대의 말. 겉보기와는 다른 사근하고 다정한 말씨에 상처로 가득한 외로움은 금방 그에게 곁을 내준다.

 

 

 

 

 

“잘 됐네. 이쪽도 혼자거든.”

“······.”

“안 잡아먹어. 그냥 너도 술친구가 필요 한 것처럼 보여서.”

 

 

 

 

 

으쓱, 하며 가볍게 지나쳐가려는 남자를 나카지마는 잡았다. 그리고 그를 따라 술집으로 들어섰고 곧 술잔을 가볍게 부딪혀댔다. 술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와 같은 것으로 시켜버린 탓에 제대로 마시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잔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자주 기울이게 되었고 덕분에 점점 바닥을 드러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 뒤로 넘기니 정신이 살짝 몽롱했다. 알코올에서 오는 열감이 서서히 몸 곳곳으로 퍼지고 차던 몸을 적당히 달구어진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듯 몸이 나른한 것이 저도 모르게 옆자리 남자의 어깨를 빌렸다.

 

 

 

 

 

“끼 부리는 거냐.”

 

 

 

 

 

곳곳에 돌고 있는 열기에 귀는 물론 볼은 이미 붉어진지 오래. 나카지마는 멍멍하게 들리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 했다.

 

 

 

 

 

“끼 부리면요?”

 

 

 

 

 

 

물렁하진 뇌 한 쪽에서 문장을 만들었다. 내뱉고 보니 발칙한 말이라고 어디선가 핀잔을 주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데리고 가야지.”

“저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안 들었음 처음부터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어.”

 

 

 

 

 

듣고 싶었던 말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억지로 뽑혀버린 마음 역시 그 빈 공간을 웃음으로 몽글몽글 메워지니 계속해서 간직하라는 뜻으로 제가 좋을대로의 해석을 한 타인의 온기가 나카지마의 입술에 닿았다. 이어 체온과 비슷한 숨결 따뜻하게 불어넣어지며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진하게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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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장문 2019. 5. 19. 23:29

적흑 전력 90분 제 107회, 술주정


 

 

 

 

 

 

 

 

 

 

어디냐는 연락을 남겨도 읽지를 않고, 상황을 물어보려 한 전화도 도통 받지 않던 연인은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휘청휘청.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다녀왔어.”

아카시 군, 무슨 일

보고 싶었어, 테츠야.”

 

 

 

 

 

걱정으로 다가가니 낯간지러운 말은 물론 쪽쪽, 얼굴 곳곳에 입술을 찍어대는 답지 않은 어리광에 쿠로코는 알았다.

 

 

아카시 세이쥬로가 취했다.라는 사실을.

 

 

 

 

 

 

 

아카시 세이쥬로의 술주정

; 완벽한 그의 흐트러짐은

 

 

 

 

 

 

아무리 회사 일이라도 과음은 지양하는 편에 속했고 더불어 술이 꽤 센 쪽에 속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일인지, 얼마나 속에 들이 부은 것인지, 늘 반듯하게 걷던 걸음은 울퉁불퉁한 바닥을 걷든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라도 찧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 쿠로코가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술 냄새······.”

그렇게 심해?”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렇지만, 오늘은 그럴 수밖에 없었어.”

 

 

 

 

 

향수와 섞여 나는 냄새는 코를 독하게 찌르는 알코올. 술과는 그리 친하지 않는 탓에 한시라도 빨리 떨어지고 싶었지만, 술기운으로 달뜬 숨이 섞여 뭉개지는 투정이 늘 단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연인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조금 더 눈에 기억에 담아두고 싶었다. 본능이 담겨 부풀어버린 욕심은 망설임 없이 그를 침실이 아닌 거실로 데리고 왔고 그에 대한 사과로 물을 건네니 얌전히 한 컵을 비운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있었지. 무슨 일.”

 

 

 

 

 

부러 찬물을 내어 주었다. 정신을 차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올라버린 술기운을 꺼트리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지 여전하게 말꼬리가 늘어지고 자세 역시 늘어진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게 말이지··· 으음······, 테츠야가 넥타이를 풀어주면 생각 날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투정일까. 쿠로코는 어린아이처럼 구는 연인에 머리를 짚었다. 그냥 침실로 데리고 갈 걸 그랬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을 보는 값으로 요구하는 것인지 느긋하게 제가 넥타이를 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카시에 쿠로코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건 무슨 억지 입니까.”

풀어 줄 거지?”

 

 

 

 

 

 

잠깐이지만 놀림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오롯이 저만 담고 있는 시선에. 자신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훅 끼치는 열기가 부끄러워 살며시 시선을 빗기니 도망치지 말라는 듯 끈질기게 따라오는 시선. 집요함에 졌다.

 

 

 

 

 

알았으니까, 쳐다보는 건 그만 두세요.”

?”

그건···”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더욱 열이 오를 것임을 안다. 그랬기에 쿠로코는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아 도륵도륵 눈을 굴렸다. 아무리 굴려도 보이지 않는 구멍과 더불어 달아날 속셈을 다 안다는 듯 어쩌면 자신이 먼저 찾았을 구멍을 아카시가 단번에 막아버린다.

 

 

 

 

 

나는 테츠야를 좋아하고 있어. 그러니까 계속 보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

 

 

 

 

 

직구로 던지는 건 자신도 그러니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반칙이다.

 

 

 

 

 

손이 멈췄는데.”

그거야 자꾸 아카시 군이 말을 거니까 그렇죠.”

긴장하는 거야?”

, 무슨!”

 

 

 

 

 

숨결이 섞이는 지점에서 멈춘 얼굴이 나른하다. 아무리 시선을 빗겨도 그의 얼굴이 들이차는 거리라 화르륵 오른 불길에 다시 불꽃이 피어난다. 감당되지 않는 열이 이미 붉게 물든 얼굴을 지나 목덜미로 내려온다. 홧홧하게 자신이 지나간 자리를 알려주는 온도가 심장에 좋지 않다.

 

 

 

 

 

테츠야, 그렇게 거칠게 하면 목이 아파.”

풀어달라고 한 건 당신입니다.”

그래도 조금은 사랑을 담아서 풀어 줄 수 있는 거잖아?”

 

 

 

 

 

또 그 표정. 이대로 가다간 심장에도 불길이 닿아 모든 것이 그의 머리처럼 붉은 화염에 타버릴 것 같아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성급함과 집중력. 두 가지의 상반된 성질이 부딪혀 마냥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몇 번의 헛손질을 했을까. 이제야 겨우 풀어질 기미가 보이는 타이는 쿠로코의 손에서 난 땀으로 축축해졌다. 제 손에서 볼품없이 구겨져버린 타이가 불쌍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우선은 아니었다.

 

 

 

 

 

테츠야.”

 

 

 

 

 

이름을 불러오는 연인이 먼저.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여전히 늘어진 목소리가 겨우 진정시킨 평정에 돌을 던진다. 퐁당퐁당. 잔잔하게 몰아치는 파동이 결국은 시선을 맞추게 만들었고 얽힌 시선에 숨결이 섞이며 곧 입술이 닿는다.

 

 

 

 

 

불안해하지 마. 앞으로도 너 하나만을 볼 거니까.”

 

 

 

 

 

뭐라고 이야기하기도 전에 다시 맞춰지는 열감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나란히 누운 침대 위의 대화는 방금 마친 행위보다 더 부끄러웠다. 정말 입니까? , 그렇다니까. 도통 기억나지 않는 상황에 쿠로코는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아카시를 바라보았지만 아카시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보다 자세하게 그 날의 일을 되짚는다.

 

 

 

술에 취해서 얼마나 애먹었는지 몰라. 잔뜩 붉어진 눈으로 품을 파고드는데···”

거짓말 하지 마세요.”

들켰어? 하지만 좋아하냐는 질문은 테츠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물었던 건 사실이야.”

 

 

 

최근 술자리에 참석하여 잔뜩 취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기억은 술자리에 참여한 후 흥과 같이 오르는 술에 누군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뿐.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숙취는 더더욱 전날의 기억을 물렸고, 그것과 더불어 큰 화가 아닌 걱정스러운 주의를 주고 해장을 도와주었던 아카시였기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부린 술주정이 아카시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기에 숨겨진 일.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취한 척을 한 겁니까.”

취중진담.”

취중진담이라면······”

내가 아무리 너를 좋아한다고 말을 한들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또 물어 볼 거잖아? 그래서 조언을 구했지.”

그게 오늘 이야기해주려는 무슨 일입니까?”

 

 

 

 

대답 대신 다시 입술이 얼굴 곳곳에 찍힌다.

 

 

 

이제 알겠으니까···”

그만하라고? 하지만 다음 일은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사랑 받는 것에만 집중해, 테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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